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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법원 “규정에 없는 권한 행사한 ‘상사 갑질’은 직권남용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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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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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A씨는 지난해 팀장 B씨의 갑질에 못 이겨 스트레스성 불면증을 앓았다. B팀장은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부하들에게 고압적이고 굴욕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모욕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 B팀장은 A씨에게도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고함을 치며 자주 화를 냈다. 어느 날 A씨가 자신의 부름에 제대로 답하지 않자 B팀장은 “너는 앞으로 업무 없으니 일하지 마라”며 관련 업무에서 배제시켰다. 그리고 이튿날 출근한 A씨에게 “너 왜 아직 그러고 있냐, 당장 컴퓨터 빼라”며 “9시부터 50분간 법전을 읽고 10분간 화장실 가고,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제보받은 인사팀은 B팀장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뒤 정식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했고, 검찰은 B팀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법원은 B팀장의 행위가 부적절한 것은 맞지만, 형사적으로 처벌해야 할 범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3단독 지귀연 판사는 “B팀장의 행동은 지극히 잘못됐고 직장 내에서 있어서는 안 될 행위”라면서도 “그러나 비난가능성만을 이유로 형법상의 직권남용죄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 성립하는데, 재판부는 B팀장의 행위가 이 범죄 요건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B팀장에게 애초에 권한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직무 배제와 관련한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조직 규정에 따르면 과(課)의 업무분장 권한은 과장에게 있다”며 “애초 팀장에게 업무분장 권한이 없어 B팀장이 A씨를 업무에서 배제시킨 것을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규정상 정해지지 않은 권한을 남용한 경우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도 중요한 쟁점이다. 재판개입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에게는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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