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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노트북을 열며] ‘트릴레마’에 빠진 정부 경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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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모 기업 인사담당 임원인 A씨는 새로운 인력수급 계획을 짜느라 머리가 아프다. 정부의 정책 취지에 맞춰 정규직을 늘려야 하고, 최저임금 상승에 따라 기존 직원들의 기본급·수당도 올려줘야 한다. 모두 인건비 상승 요인이다. A씨는 “그렇다고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신입 채용을 줄이자니 청년 일자리를 늘리려는 정부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 답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공들이고 있는 경제 정책 세 가지를 꼽자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표되는 불평등 완화, 일자리 확대,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이다. 그러나 분배 지표는 최악으로 내몰렸고, 신규 취업자 수는 쪼그라들었으며, 성장률은 내리막이다. 뭐가 잘못됐을까?

세계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고 한국의 경제구조가 바뀐 영향이 크지만,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특히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기보다는 서로 효과를 반감시키는 ‘역(逆)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진단과 대응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정책이 서로 충돌을 일으켜 어느 한쪽을 풀려다 보면 다른 한쪽이 꼬여버리는 이른바 ‘트릴레마’(Trilemma·삼각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은 채용을 줄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좋겠지만, 새로운 취업의 문을 좁게 만든다. 일자리 확대와는 양립하기가 쉽지 않은 정책이라는 의미다.

일자리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정부는 세금을 쓰는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기로 했다. 2022년까지 17만명의 공무원도 늘린다. 최근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하기보다는 공무원·공기업 시험에 올인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결국 성장의 주체인 민간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공공부문에 빼앗기게 되고, 핵심 인재들이 선도하는 ‘혁신 성장’은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을 펼치기도 부담스럽다. ‘낙수효과’는 사라졌다고 주장하며, 고용 부진과 소득분배 악화를 대기업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게 지금 정부다. 이 논리대로라면 옛 방식의 성장정책은 되려 불평등 완화와 일자리 확대에 ‘마이너스’다. 그렇다고 의료 부문 규제 완화 같은 ‘혁신 성장’이라는 대안을 밀어붙이자니 현 정부 지지층의 반발이 크다.

보수·진보정권을 떠나 ‘취지’가 나쁜 정책은 없다. 단지 ‘결과’가 나쁜 정책이 있을 뿐이다. 지금처럼 세 가지 정책이 제각각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면 트릴레마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선의를 가지고 추진한 정책이더라도 부작용이 커진다면 나쁜 정책이 되는 것이다. 정책의 방향과 속도를 수정할 때가 됐다.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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