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게임은 병인가?]<1> '게임혐오' 만연한 미디어…자극 경쟁에 실종된 게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자신문

보건복지부가 게임을 프레이밍하는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났던 2015년 게임중독 지하철 광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게임이 한창 진행 중인 컴퓨터 전원을 순간적으로 모두 꺼 봤습니다.”

2011년 모 방송사 뉴스에서 한 기자가 게임이 사람 성향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게임이 진행 중인 PC방 전원을 내리면서 한 말이다. 당연히 게임을 즐기던 PC방 이용자는 당황스러워하며 격한 언행을 보였다. 기자는 게임이 폭력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당 기자 노트북이 마감을 앞두고 갑자기 꺼지거나 촬영편집본이 방송 10분 전에 갑자기 날아가 격한 행동을 보인다면 어떨까. 필시 기사가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는 접근인 셈이다.

독일 하노버 의과대학은 폭력성과 게임 연관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콜 오브 듀티'와 같은 1인칭슈팅게임(FPS)과 같은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들의 자기공명영상(MRI)을 스캔했다. 연구진은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잔인한 이미지도 함께 보여줬다. 연구 결과 오랜 시간 게임을 해온 게이머나 비게이머 모두 공격성과 신경 반응에 별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처럼 연구뿐 아니라 각종 방송, 뉴스 미디어에서도 의도적인 왜곡과 편견으로 게임을 다루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게임혐오'라는 프레임 속에 게임을 가둬놓고 주위 환경이나 사회 구조적 문제를 게임 문제로 특정한다.

2015년 보건복지부 게임중독 광고가 한 예다. 광고는 '게임 BGM이 환청처럼 들린 적이 있다' '사물이 게임 캐릭터처럼 보인 적이 있다' '게임을 하지 못하면 불안하다' '가끔 현실과 게임이 구분이 안 된다' 네 가지 상황 중 하나라도 '예'가 있다면 게임 중독이 의심된다는 내용이다. 나아가 게임에 중독된 남자가 지나가는 할머니를 폭행하는 장면을 담았다.

광고가 상영된 후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으로 게임중독 현상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부담이 됐던 복지부는 할머니 폭행 장면을 삭제하고 다시 배포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강하게 반발해 결국 청와대 중재로 광고 송출을 중단했다. 복지부가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식으로 대중에 알릴 것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례다.

복지부만이 아니다. 일부 미디어는 자극적으로 클릭 수 유도를 위해 게임을 이용해 왔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나 영유아 유기, 정모 살인사건 등에 항상 '게임중독'이라는 단어를 붙여왔다. 최근 뉴질랜드 총격사건은 '게임처럼'이라는 붙인 제목을 많은 미디어가 받았다. 포털은 총기난사-게임으로 엮인 헤드라인 일쑤였다.

게임이 실제로 살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FPS 이용자가 살인을 저지르면 칼과 총을 쏘며 사람을 죽이는 행동을 평소에 해왔다고 보도한다. GTA 영상을 보고 누나를 죽인 사람 역시 게임 영상을 봤기 때문에 죽였다고 단정 짓는다. 선릉역 살인미수 사건에서는 '배틀그라운드'하던 사람이었는지 '서든어택'을 하던 사람이었는지만 중요했다. 경찰 관계자가 “게임과 무관한 감정싸움이 범행으로 이어진 것”이라 말했지만 왜 그런 사건이 있었고 경찰이 어떤 조처를 할 것인지에 대한 보도는 뒷전이었다.

과학적 검증 없는 프레이밍은 위험하다.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 따르면 리처드 닉슨 미국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TV 연설에서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온 국민이 그를 사기꾼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다수 여론은 언어와 이미지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 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으로 지목됐다. 프레임 속으로 묻지마 범죄, 사이코패스, 아동 학대가 들어왔다. '게임이 폭력성을 높인다' '게임중독은 정신병' 등 범죄 원인으로 꼽혔다. 게임에 중독되면서 망상에 빠지고 이후 범죄를 저지른다는 편견이 생겨났다.

하지만 게임과 폭력성의 상관관계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오히려 연구가 진행될수록 게임 순기능이 새롭게 확인될 뿐이다. 기능성 게임이나 습관개선, 통증과 불안 개선과 같은 연구 결과가 대표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 이해도가 부족한 미디어가 사건과 게임중독을 관련지어 자극적 언어를 사용해 보도하는 것은 프레이밍하려는 의도”라며 “특정 이슈를 한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한 프레이밍 싸움에는 의도가 항상 개입한다”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