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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대기업선 당연한 육아휴직…中企는 아직도 10곳중 4곳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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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 닥친 인구감소 / ④ 엄마친화적 근무환경 만들자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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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에 다니고 있는 에일린 씨(34)는 최근 4개월간 유급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직했다. 그는 복직 한 달 전부터 직장 상사, 인사팀과 근무 형태에 대해 협의했고,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와 '유연근무(Agile Working)' 시스템에 맞춰 일하기로 했다. 그가 선택한 건 재택 및 월·화·수요일 사흘 근무다. 목·금요일은 또 다른 출산휴가 복직자가 자기 일을 대신한다. 에일린 씨는 "출산 직전 3개월간은 사무실로 출근한 날이 8일밖에 안 될 정도로 유니레버의 근무 형태는 매우 자유롭다"며 "직장 상사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면 시간제 근무도 가능하니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일하는 엄마들이 보기에 파격적인 이러한 근무 혜택은 유니레버 워킹맘에겐 당연한 권리다. 유니레버는 자체적으로 만든 '엄마 직원을 위한 글로벌 웰빙 스탠더드(Global Maternal Wellbeing Standard)' 정책에 따라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근무하는 출산 여직원 모두에게 최소 16주간 유급휴가를 주고, 여성 근로자가 50명이 넘으면 반드시 수유시설과 어린이집을 갖추도록 했다.

그중 핵심은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과 근무지 선택 그리고 일자리 나누기다. 리나 네어 유니레버 인사부문 대표는 근무 시스템을 소개하며 "전 세계 유니레버 여직원이 매년 약 1800명의 아이를 낳고 있다. 그만큼 일반 직원에서 워킹맘으로 전환하는 것을 조직이 나서서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워킹맘에게 '당신의 실제 삶 모습 그대로 일하면 된다(Bring your whole selves to work)'고 강조하고, 그것이 그들의 업무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는 유니레버 같은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일·육아 병행 문화가 정착된 선진국이라면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영국 런던에 있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미야 씨(38)는 지금 둘째를 임신 중이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만 재택근무를 하지만 첫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행사가 있거나 산부인과 검사가 있으면 조금도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한다. 그러고도 능력을 인정받아 거의 매년 승진했다.

나흘 중 하루는 은행에 다니는 동거남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첫째를 돌본다.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도 아이가 있으면 제도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남은 사흘은 오전 7시 30분부터 운영되는 브렉퍼스트 클럽(Breakfast Club)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며, 저녁 때는 오후 6시 넘어서까지 문을 여는 애프터스쿨 클럽(Afterschool Club)에서 첫째를 데리고 집에 온다.

브렉퍼스트 클럽과 애프터스쿨 클럽은 학교에서 외부 민간 업체에 위탁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공간은 학교 내 안 쓰는 건물을 빌려주거나 학교 밖 건물을 임차해 마련한다. 정부 지원이 있기 때문에 비용은 8주에 30파운드(약 4만5000원)에 불과하다. 두 클럽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2~3개월에 걸쳐 경찰 신원조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만큼 학부모들에게 신뢰가 깊다.

미야 씨는 "영국은 네 살부터 초등학교를 가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민간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네 살 미만 자녀가 있으면 회사에서 재택·파트타임 근무를 적극 권장하기 때문에 베이비시터 없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세계적 흐름에 맞춰 우리나라 기업도 '엄마 친화적'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다만 근로 현장에서 체감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수요자인 직원들 반응이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은 임신 29주가 넘은 여직원 중 신청자에 한해 출산 때까지 주 2회 재택근무를 허용한다. 하지만 2017년 6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이 제도를 활용한 이는 7명에 그쳤다. 롯데는 2017년 1월 전 계열사에 남성 육아휴직(1개월) 의무화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작년 한 해 1900명의 아빠 직원이 육아휴직을 다녀왔다. 그러나 남성 육아휴직을 다녀온 한 롯데 계열사 직원은 "일부 도움되는 건 있지만, 몇 년씩 걸리는 육아전쟁을 이겨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밖에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이 최근 인천 송도사옥에 영유아 100여명을 돌볼 수 있는 826㎡(250평) 규모의 직장 어린이집을 열고 임직원 보육수요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문제는 그나마 일·육아 병행 지원이 이뤄지는 건 대기업과 여성가족부 선정 가족친화 인증 기업 등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 중 93.1%가 육아휴직제를 도입한 반면 10~29인 기업은 46.1%, 5~9인 기업은 33.8%에 그쳤다. 또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정규직은 육아휴직 사용이 가능했으나 비정규직·자영업 중 58%는 쓰지 못했다.

이에 대해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부분 여성이 일하고 있고 제도적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기업에서 표준 인사관리제도를 개발·보급하는 경영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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