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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웃겨 본’ 작가들이 만드니 ‘명품 드라마’로 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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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등 예능·시트콤서 내공 쌓아…안방극장에서 ‘신선함’으로 승부

탄탄한 구성에 반전…주목받아

관심사·트렌드 반영도 인기 비결

경향신문

최근 드라마 시장에서 예능·시트콤 출신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JTBC <눈이 부시게> 이남규 작가는 KBS <개그콘서트> 출신이며,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송재정 작가는 SBS <순풍 산부인과>를 비롯해 유명 시트콤 대본 집필에 참여했다. tvN <응답하라> 시리즈 이우정 작가는 KBS <1박2일> 메인 작가 출신이다(위 사진부터). JTBC·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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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지난 19일 배우 김혜자의 독백으로 끝맺은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마지막까지 시청자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탄탄한 구성과 놀라운 반전,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결말까지, <눈이 부시게>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작품’으로 꼽혔다. 대본을 집필한 작가진에게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렸다. <눈이 부시게>가 끝난 후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 찾아봤다는 한 시청자는 “작가의 특이한 이력에 놀랐고, 한편으로는 이래서 그런 작품이 나왔구나 하며 납득이 갔다”고 말했다.

<눈이 부시게>는 이남규, 김수진 작가가 공동 집필했다. 두 작가는 JTBC <청담동 살아요>, KBS <올드미스 다이어리>, JTBC <송곳>의 대본을 함께 썼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이남규 작가(46)의 이력이다. 그의 필모그래피 첫 작품은 KBS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였다. “밥 묵자”란 대사로 유명한 2007년 <개그콘서트> ‘대화가 필요해’ 코너로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코미디부문 방송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이후 KBS <폭소클럽>, tvN <코미디빅리그>를 거쳐 시트콤 KBS <달려라 울엄마> <올드미스 다이어리>, JTBC <청담동 살아요> 등의 대본을 집필하며 ‘웃기는’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시트콤이 아닌 정통 드라마 대본을 쓰기 시작한 건 2015년 JTBC <송곳>부터였다. 2016년 JTBC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 이어 올해 <눈이 부시게>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시트콤 작가로 출발해 화제작을 쓴 드라마 작가는 이남규 작가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종영한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집필한 송재정 작가(46)는 SBS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MBC <거침없이 하이킥> 등 인기 시트콤 대본을 집필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는 가상현실 게임을, MBC <더블유>에서는 웹툰을 드라마에 접목해 참신한 소재로 호평받았으며, tvN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등을 통해 타임리프(시간여행) 장르물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명작’ 반열에 오른 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이우정 작가(44) 역시 KBS <1박2일>, tvN <꽃보다 할배> 등 인기 예능 작가 출신이다.

저마다 주력 분야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강점’은 신선함이다. 이우정 작가의 <응답하라> 시리즈의 경우 처음부터 인물 간 구도가 명확한 뻔한 로맨스물과 달리 시대극에 마지막까지 러브라인을 밝히지 않아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해 인기를 끌었고, 송재정 작가의 작품들은 사극, 스릴러, 액션 등의 장르를 판타지와 한 번 더 결합시켜 예측불허의 전개를 선보였다. <눈이 부시게>는 치매 노인의 이야기를 타임리프 장르물로 풀어내면서 드라마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적재적소에 활용되는 웃음 장치도 인기 비결이다. <눈이 부시게>는 혜자(김혜자·한지민)의 인생을 통해 감동과 눈물을 선사하는 한편 혜자의 오빠로 등장하는 김영수(손호준) 캐릭터를 통해 극의 분위기를 띄우고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인터넷방송 BJ로 등장한 영수는 최신 유행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철없는 아들·오빠 역할을 담당하며 중장년 시청자들의 애정을 듬뿍 받았다. 이우정 작가는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쓰레기’ ‘개딸’ 등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각 캐릭터의 개성을 극대화한 전략으로 웃음을 유발시켰는데, 이는 <1박2일> 등 예능 속 캐릭터 설정을 접목한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웃겨 본’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한 케이블 예능 PD는 “예능이나 시트콤을 해 본 작가들의 작품에 남다른 점이 있다면 호기심에서 나오는 관찰력”이라며 “사람들을 웃게 하는 작품을 만드는 건 까다롭고 섬세한 작업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의 관심사나 트렌드를 주시해야 한다. 아마 이런 능력이 드라마 쪽에서도 빛을 보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송재정 작가는 지난 1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트콤에서 출발해 장르물 작가가 된 이력에 대한 질문을 받자 “학창시절부터 만화책과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게임하고 공상하는 걸 즐겼다”며 “다채로운 호기심을 좇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능·시트콤 작가들은 실존 인물이 가진 매력을 찾아내고 감동을 극대화하는 훈련이 기본적으로 되어 있다”며 “일반 드라마 작가들의 경우 캐릭터를 먼저 설정한 뒤 배우들이 거기에 맞추는 식이라면 이들은 배우에 맞게 캐릭터를 설정한다. 실제 배우의 이름을 극중 등장인물 이름으로 쓰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또 “여기에다 장르에 따른 드라마 문법의 틀에도 구속받지 않기 때문에 신선하고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가능성도 많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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