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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미투’운동 이후 직장 내 성적인 농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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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조합원 대상 인식변화 조사 결과 발표

“성적인 농담이나 여성비하 언행 줄어” 과반 넘어

“회식 줄거나 회식문화 달라졌다”는 응답도

성별 간 직무 분리 심한 곳일수록 “변화 없다”고 답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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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이 직장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꿨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올해 1∼3월 노동조합 간부 409명을 대상으로 ‘미투’ 이후 회사의 변화를 조사한 결과(중복응답) “성적인 농담이나 여성비하적 언행이 줄었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52%로 과반을 넘었다. 이어 “회사의 경영진(관리자)이 성폭력 예방에 관심을 갖게 됐다”(38.7%), “성희롱 예방교육이 강화됐다”(36.7%), “남성 노동자들이 성폭력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34.2%), “회식이 줄거나 회식문화가 달라졌다”(34.2%) 순으로 응답했다.

특히 이런 긍정적인 변화는 공기업과 공무원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처리를 위한 제도 영역에서 큰 진전을 보였다는 답변이 나왔다. 한 공기업 노조 여성간부 ㄱ씨는 “기본적인 처리 절차와 성희롱 예방 교육 등이 이전보다 훨씬 강화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절차들이 만들어지면서 실질적으로 직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구제를 요구하는 빈도수도 많아졌다”고 답했다. 공기업에선 노사 양쪽과 외부 기관이 참여하는 심의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성희롱 관련 고충상담제도가 더 널리 알려지면서 피해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ㄱ씨는 “성희롱 관련 고충처리기구가 사내에서 홍보, 선전이 되면서 직원들이 기구를 이용하게 됐고,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구제조치들이 실제로 추진이 되면서 예전처럼 ‘문제를 제기했을 때 돌아올 게 불이익밖에 없다’는 인식은 많이 덜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와 병원, 금융기업 등에서도 부분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주로 노동조합이 나서서 성희롱·성폭력 사안에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사무금융연맹 여성간부 ㄴ씨는 “노동조합이 계약직부터 정규직까지 전부 다 면담을 하고 이의제기를 하면 (처리 절차를) 바로 바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전반적인 의식 변화로 위계적, 수직적인 조직의 분위기가 바뀌기도 했다. 한 병원노조 여성간부 ㄷ씨는 “일반 직원들도 굉장히 의식이 높아지면서 조심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이라며 “어리고 예쁜 간호사들이 오면 (회식자리에) 동원하기도 했고, ‘러브샷’을 권하기도 했는데 그런 분위기가 (지금은)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다만 성별에 따라 직무가 분리돼 있는 사업장에선 ‘미투’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자동차 회사처럼 대다수의 노동자가 남성이고 여성은 소수의 사무직을 맡은 경우나 제과업체처럼 여성이 다수지만 남성만 관리직으로 승진하는 경우다. 민주노총은 “이 세 사업장의 공통점은 여성이 단순지원업무를 수행하든 기술자로 일하든 낮은 직급에서 저임금으로 일한다는 것”이라며 “명백한 성차별이 존재하는 사업장에선 ‘미투’ 운동이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직무·직급·임금 측면에서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성희롱·성폭력 피해자가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기 쉽지 않은 조건이란 설명이다. 한 건설노조의 남성간부 ㄹ씨는 “(여성은) 보통 계약직이나 비서직이 현실”이라며 “동등한 직원들 관계라는 게 건설(현장)에서는 잘 형성이 안 돼 있다”고 짚었다.

또 이런 사업장에선 기존의 여성배제 관행을 강화하는 데 ‘미투’운동이 부정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금속노조간부 ㅁ씨는 “저 여자들이 와서 내가 불편하니까 오면 안 된다. 우리가 조금만 잘못하면 ‘미투’할 것 아니냐는 것(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노조 간부의 59.4%가 “미투 운동이 가져온 부정적인 반응은 전혀 없다”고 응답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일부 사업장에선 “회식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경우가 늘었다” (14.6%)나 “업무에서 여성과 함께 일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늘었다”(10.4%) 등의 답변도 나타났다. 소위 ‘펜스룰’처럼 회식이나 업무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기피하는 현상이 실제로 일부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설문조사는 민주노총의 13개 가맹 조직, 380개 사업장 소속 간부 조합원 409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미투’ 운동으로 인해 일터의 문화가 좀 더 건강해지고 여성은 물론 경영진과 남성 역시 성희롱 예방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음을 보여준다”면서도 “성희롱, 성폭력 처리 절차나 기구 개선과 같은 제도화는 상대적으로 변화의 속도가 느린 것을 알 수 있다”고 짚었다. 또 직장 내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의 혁신”이라며 △성희롱·성폭력 예방·대응기구 실효성 강화 △성희롱 예방교육 전면 재편성 △남성의 의식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노조 교육프로그램 개발 △중소규모·영세 사업장 실태파악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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