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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스포츠도 인생도 뒤집기 쇼 … ‘황제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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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 14년 만에 마스터스 정상 ‘화려한 귀환’/ 2타 차 2위로 나선 최종라운드 / 1타 차로 짜릿한 ‘역전 드라마’ / 부상 시달려 한때 랭킹 1199위 / 전성기급 기량… 세계 6위 껑충 / 메이저 최다승 도전에 청신호 / “첫 마스터스 우승 땐 부친 함께해 / 이번엔 아이들이 축복해줘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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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황제의 포효 타이거 우즈가 15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PGA 투어 시즌 첫 번째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최종라운드 마지막홀 퍼트를 마친 뒤 우승이 확정되자 두팔을 번쩍 들며 포효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지난해 마스터스 우승자 패트릭 리드가 타이거 우즈에게 그린 재킷을 입혀 주는 모습. 오거스타=AFP연합뉴스


맹수 본능. 한번 문 먹잇감은 절대 놓치지 않는 법이다.

15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첫번째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최종라운드. 15번홀(파5) 티박스에 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4·미국)의 눈빛은 마치 호랑이처럼 이글거렸다. 전날까지 갤러리들의 환호에 상냥한 웃음으로 화답하던 우즈는 더 이상 없었다.

좀처럼 추월을 허용하지 않던 단독 선두 프란체스코 몰리나리(37·이탈리아)가 악명 높은 ‘아멘코너’의 12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리며 2타를 잃는 틈을 타 2타차 2위에서 공동선두로 나선 우즈의 표정에서는 먹잇감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맹수의 본능이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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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즈의 기세에 눌렸을까. 몰리나리는 15번홀 티샷이 페어웨이 우측으로 벗어나 레이업을 했지만 또다시 세번째 샷이 물에 빠졌고 벌타를 받고 친 다섯번째 샷도 그린에 못 미쳐 더블보기를 범했다. 반면 우즈는 강력한 드라이브샷에 이은 정확한 아이언샷으로 투온에 성공한 뒤 가볍게 버디를 잡아 단독선두로 나섰고, 16번홀(파3)에서 티샷을 홀컵 1m에 떨어뜨려 다시 한 타를 줄이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18번홀(파4)에서 아쉬운 보기가 나왔지만 먹잇감은 여전히 그의 입안에 있었다.

◆약물중독자에서 다시 황제로

‘붉은 셔츠의 공포’가 다시 오거스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대회 마지막날이면 어김없이 검은색 바지에 붉은 셔츠를 입고 필드에 나서는 우즈는 15일 열린 마스터스 최종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쳐 4라운드 합계 13언더파 275타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공동 2위 더스틴 존슨, 잰더 쇼플리, 브룩스 켑카(이상 미국)를 1타 차로 따돌린 짜릿한 역전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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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는 2005년에 이어 14년 만에 마스터스 우승자의 상징인 그린재킷을 다시 입었다. 우승 상금은 207만달러(약 23억5000만원). 우즈는 마스터스 통산 다섯 번째 우승과 메이저 15승을 달성했고 PGA 투어 통산 우승도 81승으로 늘렸다. 또 1986년 46세로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잭 니클라우스에 이어 대회 역대 최고령 우승 2위 기록도 세웠다. 우즈는 경기 뒤 “마지막 퍼트를 넣었을 때 내가 무엇을 했는지 몰랐지만 아무튼 나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며 벅찬 소감을 밝혔다.

2년 전만 해도 우즈는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PGA 투어에서 메이저 14승 포함, 통산 79승을 올리며 ‘필드의 황제’로 군림했지만 2009년 섹스 스캔들이 끊임없이 터져나오면서 ‘불륜 황제’로 전락했다. 우즈는 결국 이 사건으로 아내와 천문학적인 위자료 청구소송 끝에 결별하고 만다. 이게 끝이 아니다. 2013년 WGC 브리지스토 인비테이셔널 우승을 끝으로 허리 통증에 시달리면서 4차례나 수술대에 올랐고 고통 속에서 성적이 곤두박질치면서 세계랭킹은 1199위까지 떨어졌다.

급기야 2017년 6월에는 집 근처에서 음주·약물운전으로 체포됐다. 공개된 영상속에서 우즈의 눈은 퀭하게 풀려 있었고 경찰관의 질문에는 횡설수설했다. 황제의 위용이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팬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우즈는 포기하지않고 재활에 구슬땀을 쏟았다. 그 결과 지난해 3월 발스파 챔피언십 공동 2위,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공동 5위에 오르며 부활에 성공했고, 9월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서 5년1개월 만에 80승 고지에 올라 황제의 위용을 되찾았다. 세계랭킹 12위이던 우즈는 이날 우승으로 6위까지 뛰어오를 예정인데, 우즈가 10위 안에 진입하는 것은 4년8개월 만이다. 이에 우즈의 이날 승리는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재기 드라마라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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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마스터스 우승자 패트릭 리드가 타이거 우즈(오른쪽)에게 그린 재킷을 입혀 주는 모습. 오거스타=AFP연합뉴스


우즈는 우승이 확정되자 22년 전 마스터스 첫 우승 때처럼 그린 옆에서 기다리던 어머니 쿨디다와 딸 샘, 아들 찰리를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다. 부상으로 고통을 겪는동안 가족은 우즈에게 큰 힘이됐다. 우즈는 인터뷰 등에서 “처음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1997년에는 아버지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두 아이의 아빠가 됐고 아이들이 축복해줬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우즈는 이어 “골프에 복귀하기 전까지 아이들은 골프가 나에게 부상을 안겨줬다는 것밖에 알지 못했지만 이제 아이들도 나에게 골프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며 진정한 골프 황제에 복귀한 것보다 아버지다운 모습을 보인 것에 더 만족감을 드러냈다.

◆황제의 도전은 계속된다

2008년 US오픈 제패 이후 11년 동안 메이저대회 우승을 거두지 못해 한물 간 것으로 보였던 우즈가 마스터스 정상에 다시 서면서 거꾸로 도는 그의 시계가 새 기록을 달성할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우즈는 잭 니클라우스(미국)가 세운 마스터스 최다 우승(6회)과 메이저 최다승(18승)에 바짝 다가섰고 샘 스니드(미국)가 보유한 PGA 투어 최다 우승(82승) 기록에도 단 1승을 남겨 놓게 됐다.

우즈가 이번 대회에서 전성기 때의 기량을 보여준 만큼 이런 대기록 수립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즈는 4라운드 동안 정확한 아이언샷을 구사하며 버디 22개를 떨궜는데 25개를 잡은 잰더 쇼플리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그린 적중률도 80.56%(58/72)로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80%를 돌파했다. 잭 니클라우스는 “우즈가 건강만 유지한다면 드라이버나 아이언, 퍼트 등 모든 면에서 걱정할 것이 없다”며 메이저 최다승 기록경신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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