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일본투어 통산 23승째를 거둔 이지희(40)는 일본에서 활약한 한국 여자 선수 중 '낀 세대'라 할 수 있다.
위로는 고(故) 구옥희, 고우순, 이오순 같은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하늘 같은 선배들이 있고, 아래(연령상 그렇다는 의미)로는 안선주, 신지애, 이보미 같은 쟁쟁한 스타들이 있다.
그런데 "늘 잔잔하게, 소소하게 살아간다"고 주장하는 이지희는 샌드위치 속처럼 납작해지지 않고 든든한 '맏언니' 역할을 하고 있다. 현역 한국 여자 골퍼 중 가장 나이 많은 그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다. 꾸미지 않고 적나라하게 사실만 이야기한다는데 듣다 보면 은근히 재미있다.
왜 일본에 갔나? "데뷔하던 때 국내 대회 수가 한 자리였다. 힘들게 프로가 됐는데…."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가 '맨발 투혼'으로 IMF 위기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던 해 국내 여자 투어 대회는 7개에 불과했다. "프로 되려고 들인 밑천도 건지지 못할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는 별로 나서지 않는 스타일인데 따르는 후배가 많다.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뿐이다. 사실은 선배님들이 정말 잘해주셨다. 그 고마움을 후배들에게 전할 의무가 있지 않나."
그가 2001년 일본투어에 데뷔했을 때 고우순과 이오순 같은 선배는 "힘들게 호텔 전전하지 말고 우리 집에서 묵어라"며 밥까지 해줬다. 황아름(32)에 따르면 "언니(이지희)는 정말 잘해주신다"고 했다.
이지희는 일본에서도 '의지가 굳은 선수'란 평판을 듣는다. "잠꾸러기다. 매일 9시간씩 잠을 잔다. 남들도 그러는 줄 알았는데 최근에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골프가 재미있다는 이지희의 이유도 재미있다. "오랫동안 연습하는데 어떻게 매일 스윙이 달라지는지 모르겠다. 그게 신선하다."
좌절할 수도 있는 이유가 오히려 그를 재미있게 한다.
몇 년 전부터 '언제까지 할 건가?'라는 질문을 줄기차게 받는다고 한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한다는 일본 사람들도 이 질문은 프라이버시라고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우선 오늘을 잘 버텨보려고 할 뿐이다."
이지희는 데뷔 때와 비슷하게 드라이버로 240야드를 날린다. '오늘'을 버티다 보니 19년째 거리가 같다.
일본투어는 올해 39개 대회가 연속으로 열린다. 2010년부터 안선주를 비롯해 한국 선수들이 연속으로 상금왕을 차지하면서 '일본 투어 위기론'이 나왔던 것과는 정반대 결과다. 이지희는 "예전보다 더 수준 높은 경쟁이 벌어지고 일본 선수들 실력도 급상승하면서 팬들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결혼은? 뭘 그런 걸 물어보느냐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잊어 먹지 말라고 계속 물어보신다. 나도 생각 있다"고 했다.
[민학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