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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베끼기 만연한 보험시장 ‘배타적 사용권’ 확보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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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들, 올들어 신청 늘어 / 새롭게 개발한 상품 심사 거쳐 / 최대 1년까지 독점판매 권리 / 신규 고객창출·시장선점 효과 / 중소보험사까지 경쟁에 가세

보험업계의 ‘특허권’으로 볼 수 있는 배타적사용권 신청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보험시장 포화와 판매환경 변화로 ‘상품 베끼기’가 만연하면서 조금이라도 독점적 상품 판매 시간을 벌어보려는 보험사들의 ‘물밑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일보

23일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들어 이달 현재까지 보험사들이 배타적사용권을 신청한 상품은 10개이다. 두 협회가 지난해 한 해 동안 18개 상품에 대해 배타적사용권 신청을 받은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난 수치다.

농협손해보험은 소 근출혈보상담보로 9개월의 배타적사용권을 받았고, KB손해보험은 요로결석진단비로 6개월을 받았다. 또한 삼성생명과 DB손해보험은 각각 골절관련 위험률과 간편고지 장기요양등급 판정관련 위험률로 3개월씩 받았다.

특히 올들어 중소형 보험사들이 경쟁에 뛰어든 것이 눈에 띈다. 이달 롯데손해보험과 KDB생명은 각각 업계 첫 천식 진단비와 디스크 진단 위험률을 내세워 창사 이후 처음으로 심사를 신청했다. 최근 라이나생명도 2009년 이후 첫 배타적사용권을 신청해 집에서 간병할 때 재가급여지원금을 지급하는 특약에 대해 9개월의 독점 사용기간을 받았다.

배타적사용권 제도는 지난 2001년 보험사의 베끼기 관행을 막고 독창적 신상품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생보협회와 손보협회가 개별 보험사의 신청을 받고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3개월에서 최대 12개월까지 해당 상품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2015년 금융당국이 보험상품 사후보고제를 도입하고 상품 개발 자율화를 장려하면서 매년 한자릿수였던 배타적사용권 신청 건수는 2016년 19건에서 2017년 38건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 신청 건수는 18건으로 쪼그라들었다. 경쟁사에 상품구조를 노출하고 오히려 베끼기의 ‘표적’이 되는 위험에 비하면 단기간 배타적사용권은 별로 이득이 없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험사들이 획득한 배타적사용권 기간은 3개월∼6개월이 대부분이고 지금까지 12개월을 받은 사례는 없다.

올해 신청이 다시 증가한 것은 그만큼 보험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보험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보험가입률은 98.4%, 개인당 보험가입률은 96.7%로 이미 포화상태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보험상품으로 고객을 잡아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특히 2022년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 등으로 환경이 변하면서 보장성 상품 판매 경쟁이 크게 과열되자 보험사들이 규모에 상관 없이 상품 베끼기에 나서고 있다. 최근 치매보험의 경우 상품이 히트할 조짐을 보이자 불과 2개월여 만에 대부분의 보험사가 유사상품을 무더기로 쏟아내기도 했다. 상품노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특색 있는 상품의 일정기간 독점권을 받아내 경쟁사를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그동안 배타적사용권이 상품의 독창성을 인정받아 판매가 크게 늘어나는 실효성보다는 상품개발한 사람에 대한 포상 개념이 강했다”며 “최근에는 대형사들마저 자존심을 버리고 카피 상품을 쏟아내고 카피 속도도 빨라지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배타적사용권을 받으려는 경쟁이 심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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