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사람人] 유승민 “黨 현실에 자괴감”…다시 길 잃은 ‘개혁보수’ 아이콘

댓글 7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朴정부때도 할 말은 하던 소신파

“선거법은 패스트트랙 안돼” 주장

의총 표결 패배로 정치적 기로에

당분간은 당내서 투쟁 이어갈 듯

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임춘한 기자] "당의 현실에 자괴감이 든다. 앞으로 당의 진로에 대해 동지들과 심각히 고민하겠다."


23일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의미심장한 말을 쏟아냈다.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합의안이 과반수 표결로 추인된 직후 나온 작심 발언이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유 전 대표가 결국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개혁보수' 유 전 대표는 어느 길을 선택할까.


2018년 2월13일 바른미래당 출범 당시 "오늘부터 우리는 하나"라고 했던 그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바른정당 출신과 국민의당 출신 구성원은 여전히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한 지붕 두 가족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밀쳐내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결국 유 전 대표가 또다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아시아경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9일 국회에서 바른미래당 PI(party identity·정당 이미지)를 소개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 유 전 대표는 줄곧 패스트트랙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선거법은 '룰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끝까지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유 전 대표는 이날도 "공직선거법 개정은 다수의 힘으로 안 된다고 얘기했지만 이런 식으로 당의 의사결정이 된 것은 굉장히 문제가 심각하다"며 당 지도부를 향해 일침을 날렸다.


'할 말은 하는 정치인' 유승민다운 행보였다. 2005년 1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그이지만 박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정부 정책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2015년 4월에 유 전 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교섭단체 연설을 하면서 갈등은 정점을 찍었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유 전 대표가 당장 바른미래당 탈당 카드를 꺼내들진 않을 전망이다. 우선은 당내 투쟁을 좀 더 이어나갈 생각으로 보인다. 그는 "의총 논의 과정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지 못하면 당론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며 "당론이 아니기 때문에 원내대표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을 절대 사ㆍ보임할 수 없다고 요구했고 원내대표는 그러지 않겠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사개특위 차원에서라도 그의 소신인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아보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 전 대표의 내부 투쟁은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 출신이 고작 8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적 열세는 이번 패스트트랙 의총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끝내 현실의 한계에 부딪힌 그의 정치적 결단이 임박했다는 얘기다.


아시아경제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 전 대표로서는 바른미래당이 또 하나의 뼈아픈 정치적 실패가 됐다. 유 전 대표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함께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중도가 힘을 합쳐 통합과 개혁의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2018년 6월, 그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ㆍ기초단체장 0석이라는 충격적 결과를 얻고 당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후로 유 전 대표는 침묵과 잠행을 이어왔다. 그만큼 그의 개혁보수에 대한 고민도 깊어져만 갔다.


유 전 대표는 지난 1월24일 바른정당 창당 정신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보수가 바로 서야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는 신념 하나로 개혁보수의 깃발을 세웠던 날"이라며 "바른정당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지만, 바른정당의 창당 정신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생각은 여전히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현재 그의 상황이 '사면초가'라는 것이다. 유 전 대표는 2017년 5월 그의 품을 떠나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 이들의 전철을 밟을 수도 없다. 한국당 내 강경파들은 유 전 대표를 여전히 배신자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으로 돌아간들 운신의 폭은 지금보다 훨씬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당에서는 그가 개혁보수의 날개를 펼칠 수 없다는 말이다.


분명 유 전 대표와 한국당은 간극이 있다. 물론 그 역시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인물이다. 하지만 보수 정치인임에도 진보와도 대화가 통할 정도로 유연한 사고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차이는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5주기 때도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막말' 논란에 휩싸였던 한국당과 달리 그는 "5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아픔은 그대로"라며 "우리는 이제 통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가 개혁보수의 길을 어떻게 보여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