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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아들이 30년 만에 살아 돌아왔다...'숨은그림찾기'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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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기린 부산 동아대학교의 ‘6월 항쟁도’ 벽화는 완전히 복원될 수 있을까. 그동안 담쟁이 덩굴에 가려졌던 벽화가 일부나마 빛을 보게 됐다. 뉴스타파가 지난 2017년 6월 동아대 6월 항쟁도와 이태춘 열사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6월, 숨은그림찾기’를 방송한 지 2년 만이다. (관련보도 : <6월, 숨은그림찾기> 2017.6.22)

동아대 민주동문회 등으로 구성된 ‘6월 항쟁도 벽화복원 사업추진위원회’(이하 벽화복원 추진위)는 지난 4월 19일 부산 동아대 승학캠퍼스에서 ‘6월 항쟁도 빛봄 문화제’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민주동문회 회원, 동아대 학생, 직원, 부산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행사 마지막에 직접 가위를 들고 담쟁이 덩굴을 일부 제거했다.

6월 항쟁도(사진)는 1988년 당시 동아대 학생들이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당시 동아대 출신 희생자 이태춘 열사를 기리기 위해 동아대 담벼락 한쪽에 그린 벽화이다. 이날 일부 담쟁이를 걷어내면서 벽화 속 이태춘 열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벽화의 색은 바랬지만 철조망과 성조기를 뚫고 나오는 이태춘 열사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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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항쟁도 원래 모습(맨 위)과 2017년 6월 뉴스타파 보도 당시 모습(가운데). 지난 4월 19일 일부 담쟁이 덩굴이 제거되고 벽화 속 이태춘 열사의 모습이 드러났다(맨 아래).

벽화복원 추진위는 “6월 항쟁도 벽화는 6월 민주항쟁을 소재로 그린 전국 최초의 벽화이자 전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벽화”라며 “벽화를 복원하는 것은 민주화 사료로, 문화 예술적 사료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벽화복원 추진위는 지난 2017년부터 벽화 복원을 위해 각종 토론회와 1인 시위, 동아대 총장 면담 요청 등을 진행해왔다. 벽화복원 추진위는 현재 담쟁이 덩굴 아래 벽화가 남아 있는 만큼 현재의 위치에 벽화를 복원해 6월 민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추진위는 이를 논의하기 위해 한석정 동아대 총장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있지만 실제 면담은 성사되지 않고 있다.

학교 측은 6월 항쟁도를 반드시 해당 자리에 복원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학교 관계자는 “굳이 벽에 복원하는 것보다 학교에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3D 영상으로 재연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대는 지난해 두 차례 학술 토론회를 열어 동아대와 부산의 민주운동을 조명하고 6월 항쟁도 복원에 관해 논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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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는 최근 6월 항쟁도 벽화 아래에 담쟁이 덩굴을 훼손하지 말라는 경고판을 설치했다.

벽화복원 추진위는 담쟁이를 자르기 전 학교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동아대 측은 사전 승인 절차 없는 행사라며 불허했다. 특히 중간고사를 앞둔 학생들의 수업권과 학습권 방해가 심각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학교 측은 오히려 6월 항쟁도 앞에 “벽화를 포함한 벽면 및 담쟁이덩굴 등의 훼손을 금지한다”는 경고 안내판을 설치하고 인근에 CCTV도 설치했다.

벽화복원 추진위는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은 지난 2017년 4월 전국 68개 대학 민주동문회와 부산지역 2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이 6월 항쟁도 복원을 위해 만든 단체다. 6월 항쟁도에는 이태춘 열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태춘 열사는 1987년 6월 18일 당시 사무직 노동자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가 개최한 최루탄 추방의 날 집회에 참석했다가 최루탄을 맞고 고가도로 위에서 떨어져 엿새 뒤인 6월 24일 끝내 숨졌다. 당시 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1997년 이태춘 열사의 가족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날 벽화복원 추진위 행사에는 이태춘 열사의 어머니 박영옥 씨도 참석했다. 벽화에서 아들의 얼굴이 드러나는 모습을 지켜본 박영옥 씨는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갑다”고 말했다.

취재 조현미
촬영 신영철
편집 박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