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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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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허진석 부국장

올해는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의 탄생 130주년이다.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늘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제철사업으로 성공한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금수저'다. 그의 집엔 교양과 품위가 넘쳐서, 요하네스 브람스나 구스타프 말러 같은 예술가들이 일상처럼 드나들었다고도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생애는 몇 가지 인연으로 해서 아돌프 히틀러와 연결된다. 히틀러는 비트겐슈타인보다 일주일 앞서 태어났고(4월 20일) 린츠에 있는 국립실업학교(레알슐레)에서 함께 공부했다. 히틀러는 성적이 나빴고, 비트겐슈타인과 동갑이었지만 두 학년 아래였다.


히틀러의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느낀 열등감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 각별한 인연을 짐작하게 하는 에피소드 따위는 없다. 다만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가 함께 나온 사진이 전할 뿐이다. 히틀러는 학교에서 "이상한 유대인을 만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데 그 이상한 유대인이 비트겐슈타인일지 모른다. 비트겐슈타인은 유대인이며 엄청난 부자의 아들로서 독일어의 2인칭 존칭 대명사인 'Sie'를 사용하는 등 귀족적인 티를 냈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부잣집 자제들이 가는 김나지움이 아니라 실업학교에 진학한 데는 사업가 아버지의 뜻이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비트겐슈타인이 히틀러와 마주치는 지점이 또 하나 있다. 오토 바이닝거(Otto Weininger). 1902년 빈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성과 성격(Geschlecht und Charakter)'을 발표한 다음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천재가 아니면 죽는 게 낫다'는 어록을 남긴 사나이다. '비트겐슈타인 평전'(필로소픽)은 사춘기의 비트겐슈타인이 "바이닝거의 저작을 읽고 자신의 정체성을 끝없이 고민하며 천재의 의무에 사로잡힌다"고 설명한다. 바이닝거는 유대인이었는데, 히틀러는 '참모본부에서의 독백(Monologe im Fuehrerhauptquartier)'이라는 글에서 "유대인은 다른 민족들이 해체되는 것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한 오토 바이닝거 말고는 인정할 만한 유대인이 없다"라고 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버트런드 러셀의 제자로 지낸 시기부터 1차 세계대전 이후 시골에서 교사생활을 하기까지를 전기, 교사생활을 마치고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돌아간 뒤 사망할 때까지를 후기로 구분한다. 전기를 대표하는 책이 '논리철학논고(Logisch-Philosophische Abhandlung)', 후기를 대표하는 책이 '철학적 탐구(Philosophische Untersuchungen)'이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유명한 경구를 떠올릴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일기에 "한 문장에는 하나의 세계가 연습 삼아 조립되어 있다"고 썼다. 이러한 사고의 바탕 위에서 기존 철학, 특히 형이상학이나 도덕학에서 신이나 자아, 도덕 등은 실제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없어서 뜻(Sinn)이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증명할 수 없어서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증명하려 하여 도리어 무가치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비트겐슈타인 탄생 130주년을 기념해서 책이 여러 권 나왔다. '비트겐슈타인 평전', '색채에 관한 소견들'(필로소픽), '철학, 마법사의 시대'(파우제) 등이다. 볼프람 아일렌베르거는 철학, 마법사의 시대의 첫 장을 비트겐슈타인의 박사학위 구술시험 장면으로 시작한다. 1929년 6월 18일, 러셀은 불혹의 비트겐슈타인에게 박사학위를 주기 위해 논리철학논고를 박사논문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비트겐슈타인이 러셀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비트겐슈타인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는 말로 시험을 마친 뒤 러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요. 당신들이 이해 못할 줄 알았어요."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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