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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경영 어려워 폐업한 회장님, 100평 고급아파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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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쉬운 해고, 그리고 폐업 당한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

지난 23일, 성진씨에스,신영프레시젼,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들이 안성과 평택, 그리고 서울 가산동을 경유하며 공동투쟁을 했다. 안성에는 ㈜레이테크코리아 제조공장이, 평택에는 19명의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들을 해고한 임태수 사장의 자택이 있다. 가산동은 신영프레시젼과 성진씨에스 회사가 있던 곳이다. 두 회사는 폐업을 했다. 해고와 폐업을 당한 여성노동자들이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함께 싸우고 있다. 그 함께하는 싸움을 기록한 글이다. (필자)

견출지 만드는 여자들과 휴대전화 만드는 여자들

사장님은 신도시에 산다. 이제 입주를 마친 대단지 아파트답게 1층 상가에는 공인중개사 업체가 줄지어 서 있다. 그 옆으로 치킨, 커피전문점, 빵집, 편의점이 들어섰는데 상점 대부분 브랜드 가맹점이다. 우뚝 솟아오른 아파트는 자로 잰 듯 반듯하고, 깔끔하고 세련된 상점들은 익숙하다 못해 어느 곳에 복사해 붙여 넣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사장님 자택 소개가 길었다만, 이것은 사장님을 만나겠다고 고급아파트에 찾아간 낡은 동네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공장에도 찾아갔으나 사장님은 없었다. 얼굴도 안 보여주면서 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퇴직금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레이테크 코리아(이하 레이테크)라는 회사 노동자들인데, 4월에 해고됐다. 견출지 같은 라벨류 문구를 만드는 회사다.

사장님을 찾아 안성 레이테크 공장에 가니, 한때는 해고된 이들이 포장했던 문구용품이 구석에 쌓여있었다. 다른 회사 노동자가 그걸 보더니 말한다.

"이거 우리가 그냥 문구점에서 사는 그런 거잖아."

흔히 쓰던 물건을 내 옆에서 '투쟁하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신기한가 보다. 모든 제품에 사람의 노동이 담겨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우린 종종 잊는다. 그런데 정작 그이는 더 흔한 물건을 만드는 노동자다. 신영프레시젼(이하 신영)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신영은 LG전자의 1차 하청업체로 핸드폰 부품을 만드는 회사다.

"우리가 사장 집 찾겠다고, 어디 부근 산다는 것만 아니까. 거기 단지 지하주차장을 다 돌았어. 차 번호만 달랑 아니까."

신영 노동자들도 회장님을 찾아다녔다. 회장님을 회사에서 만날 수 없었다. 올해 1월 공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 폐업한다던 회장님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고급아파트를 두 채나 지녔다. 덕분에 직원들은 두 곳을 오가며 1인 시위를 해야 했다.

회장님의 100평짜리 아파트가 있는 성수동을 가는 길목에 지금은 안성으로 옮겨간 레이테크 회사가 있었다. 그곳 여성노동자들도 싸우고 있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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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테크코리아 임태수 사장이 사는 아파트 단지 앞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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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동차 시트 만드는 여자들

또 다른 인연도 있다. 신영프레시젼은 서울디지털단지(금천구)에 자리했다. 건실한 중소/견 기업이 덩치만 큰 기업 안 부럽다는 말이 있다. 신영은 그런 곳이다. 소위 알부자라 했다. 그리고 같은 단지에 알짜배기 중소기업이 또 있었다. 성진씨에스(이하 성진). 그랜저, 소나타 등 승용차에 들어가는 자동차 가죽시트를 제작하는 업체다.

한쪽은 전자산업, 다른 한쪽은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였다. 서로 만날 일 없는 회사였지만, 공통점이 생겼다. 성진씨에스도 회사 문을 닫았다. 신영보다 폐업 선배다. 1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세 개 회사의 노동자들은 동변상련하는 기분으로 자주 보게 됐다. 중년을 훌쩍 넘은 나이대가 비슷했다. 근속 10년 이상인 사람이 대다수, 서글프게도 실직 상태라는 처지도 같다. 경영 위기로 문을 닫는다는 사장님들이 고급주택에서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는 것 또한 비슷하다. 이를 납득할 수 없는 마음이 노동자들을 함께 모이고 정 들게 했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납득시켜야 할 책임

두 달에 한번 꼴로 생산물량이 늘어났다. 노동자들이 골병 들어도 병원 보내줄 시간조차 없다고 했다. 그런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물량이 없다고 했다. '우연히도'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지 3개월만에 문을 닫는다. 성진씨에스 이야기다.

신영프레시젼은 인원감축을 했다. 전자산업 호황기는 끝났다고 했다. 압박에 못 이긴 직원들이 나가고, 생산물량을 감당 못하는 회사는 단기 알바와 파견용역 고용으로 자리를 메꿨다. 정규직원 280명 있는 회사에서 파견 알바만 200여 명이었다. 회사가 어렵다는 시절에도 신영종합개발이 운영하는 골프장에는 백 억 단위 돈이 투자됐다.

레이테크코리아는 인권침해, 인격모독으로 유명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회사다. 가장 널리 알려진 탄압으로 회사가 여성 탈의실에 cctv를 설치해 감시한 사건이 있다. 이것을 계기로 노동조합이 생기지만 2015년 안성공장으로 부당배치를 당한다. 그때 싸워 승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포장부에서만 일한 여성직원 20명에게 영업을 뛰라 했다. 영업부 전환배치에 반발하자 올해 4월, 해고한다.

쫓겨난 이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사장이 산다는 부촌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을 때면 더 이해가 안 됐다. 세상 누구도 회장님,사장님에게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납득시켜야 할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 점을 의문했다.

너무 이상하지 않느냐고

프레시안

▲ 레이테크코리아 임태수 사장이 사는 아파트 단지 앞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자신의 요구를 적고 있다. ⓒ희정


이들 처지를 듣겠다고 찾아갔을 때, 자리에서 나온 말은 "억울하다" "힘들다" "슬프다"가 아니었다. 오히려 물었다. "너무 이상하지 않느냐"고.

"사장 혼자 번 게 아니잖아요. 자기가 저렇게 큰 집을 사고, 공장건물을 이 주변에 몇 개나 세우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힘이 필요했던 거잖아요.'(신영 조합원)

기업 하나를 세워 유지하는 데 수십, 수백의 노동이 필요하다. 노동은 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람이 한다. 일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회사를 밥줄, 목숨줄이라 한다. 그런데 이것을 툭 끊어내도 사회적 제재가 없다.

폐업은 어렵지 않다. 회장,사장, 주주 동의만 있으면 기업의 자유의지다. 정리해고 요건도 따를 필요 없다. 그래서 이상하다. 사람 목줄을 끊는 일이 이렇게 쉬워도 되는지 묻는다.

여자들은 집이 가까우면 웬만한 것은

손쉬운 해고와 폐업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길게는 1년을 거리에서 싸웠다. 세상을 향해 소리내 본 적 없는, "회사랑 집만 알던" 그녀들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문자 그대로 '목소리 내는 일'부터 겁이 났다. 막상 싸우려니 힘이 있나 빽이 있나. 거리에 나가 피켓부터 들고 섰다. 처음 거리에 섰을 때 "1분이 1시간 같았다"고 한다. 입이 안 열렸다.

거리에서 또는 사라진 회사 건물을 차지하고 앉아 싸운 지난 몇 개월 동안 평생 안 겪어볼 일을 겪었다. 그래서 '노조' 두 글자, 그러니까 투쟁을 하게 된 동력인 노동조합 글자만 떠올려도 가슴에서 무언가 북받쳐 오른다고 했다.

그럼 그 전에는 어떤 일을 겪고 살았나.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문자를 보내고 받을 때까지 연락을 직원들에게 했다는 레이테크 사장. 지금도 사장 이름의 문자 메시지가 뜨면 가슴이 답답하다는, 이미 해고된 노동자의 이야기에 정작 내가 답답해 말했다. 어차피 해고당한 마당에 뭐가 무서워 받아주고만 있냐. 그랬더니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아서' 라는 답이 돌아온다.

처음에는 학자금, 그 뒤로 야금야금 성과금과 각종 수당을 없애더니 드디어 용역청소비를 아낀다며 가죽시트 만드는 성진 노동자들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는 대목에서 그만 묻고 만다. 왜 그만 두지 않았냐고. 왜 이렇게 오래 다녔냐고.

"여자들은 집이 가까우면 웬만한 건 참고 이겨내잖아요."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

말문이 막히지만 정답이다. 대다수가 아이 낳은 후 처음으로 구한 직장이라 했다. 육아가 온전히 그녀들만의 몫인 상황에서 웬만한 것은 참으며 일한다. 집과 회사를 종종걸음 치는 사이, 어느덧 환대받지 못하는 나이든 노동자가 되고, 어디 가서 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나이가 되고, 더 약자가 된다. 더 참고 이겨내야 하는 사람이 된다.

그 결과? 쏟아지는 물량을 감내하며 점심시간 반납해 일해도 고맙다는 말이 없다. 다음 달 생산물량만 더 늘어난다.(신영) 한 끼 1800원짜리 점심을 감내하면 그 다음에는 아예 점심값을 못 준다고 나온다(성진). 늘 최저임금에서 머무는 임금을 감내하면 너희들은 시급 7000원이 아니라 1000원도 아까운 노동이라는 소리가 돌아온다.(레이테크)

"노조 만들면 가만 안 둔다"던 사장들의 협박은 당연한 말이었다. '종업원'은 사장과 테이블에 마주앉아 협상을 논할 존재가 아니다. 그저 "죽을 힘을 다해 (일)하라"면 해야 하는 인력이었다. (성진씨에스 회사 벽면에 걸린 표어다)

사장님 소원대로 열심히 일했다. 직장 잃은 노동자들이 사장이 사는 동네까지 쫓아가, 겨우 그 앞에서 적은 문구가 이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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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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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해고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동값은 올라가질 않았다. 오히려 국내외 있는 '더 값싼' 외국 노동력과 수시로 비교하며 수당, 휴일, 임금을 내놓으라 강요당한다. 존중받질 못했다. 결국 '노동자' 자리마저 놓고 가라 했다.

회사 밖으로 나와 보니, 세상도 자신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여자는 반찬값이나 번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해고시키잖아요." 그래서 자신들의 해고가 더 쉬웠음을 안다.

3개 업체 노동자들과 레이테크 회사와 사장 자택이 있는 안성과 평택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나는 창밖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눈에 익는 상점이 하나 없을까. 틈틈이 중국어로 쓰인 간판이 보인다. 2층짜리 허름한 건물들이 도로변에 늘어서 있다. 금천구 산업단지로 차가 들어선 것이다.

브랜드 가맹점들로 채워진 사장님의 신도시와 대비된다. 사장님들은 그곳에서 생활을 누리면서 이곳 금천구에 공장을 세워 돈을 번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믿는다. "당신들을 위해 내가 회사를 유지하고 있다(성진)"고.

산업단지 내로 들어서면 고층 건물이 등장한다. 번듯한 건물마다 빼곡히 IT와 전자산업 업체가 들어서고 그 뒤편을 아파트식 공장이 둘러싼다. 노동은 네모난 건물 속에 갇히고, 그녀들의 삶도 함께 숨겨진다. 그 삶이 세상에 나와 빛을 본 것은, 사장님이 그이들을 공장 건물 밖으로 아예 쫓아낸 후다. 인생은 늘 아이러니를 동반한다.

서로에게 기대어 묻는다

"우린 반찬값을 벌려 나오는 게 아니라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나왔고. 내 일에 자부심과 책임감도 있었고. 내가 만든 차가 수출도 했고. 한 몫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성진 조합원)

10년, 20년 한 직장에서 일했다. 경력이 쌓이고 기술이 늘었다. 단순노동이라 흔히들 생각하지만, 막상 이들의 노동을 들춰보면 그 속에는 세월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다. 누구도 그 속을 보려 하지 않을 뿐이다. 한 사람 몫을 넘치게 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 왔다' 레이테크 노동자가 써내려간 문장은, 그 넘치는 몫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그래서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거리에서 싸운다. 자신들이 '경영상의 이유'라는 허울 좋은 말로 쉽게 버려도 되는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그 당연한 사실을 세상은 모르기에. 오늘도 성진, 신영, 레이테크 노동자는 싸운다.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묻는다. "이런 세상은 너무 이상하지 않냐"고.

기자 :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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