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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가는 제조업 엔진][르포]발길끊긴 기계 상가…창고엔 먼지 쌓인 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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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동공단·시화기계유통단지 “산업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 산업단지공단, 전국 공단 가동률 전월 대비 뚝뚝

- 하청 주며 특정 기계 요구하고 3·4차 업체에는 어음 결제

- “옛날 공장 나간 자리 신사업 들어와…그래도 공단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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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기계상가에는 비닐에 싸인 채 중고 기계들이 방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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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문 닫는 곳 수두룩합니다.” “지금은 다들 버티는 단계입니다.”

한국에서 못 구하는 기계설비가 없다는 시화기계 유통단지 4동에서 절곡기·절단기·선반·밀링·프레스 등 중고기계 교환 및 매매를 전문으로 20년째 해 오고 있는 박영규 사장은 24일 헤럴드경제 기자를 만나 “예전에는 중고 기계 기름때가 가득 절어있는 거 갖다가 씻겨만 놓으면 하루이틀만에 다 팔려나갔다. 요즘엔 여기 유통단지에만 기계상이 한 400개 있고, 근처 MTV단지, 나성단지 전부 기계상인데 문 닫는 곳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아예 가게를 접고 ‘가방쟁이’하며 여기저기서 기계 브로커 하고 수고비나 챙긴다고 전했다.

한국 제조업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 공단에는 공장단지 매물이 나와도 나가지를 않는다. 중고 기계를 사고 파는 기계상들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가게를 접고 발품을 판다. 통계로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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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남동공단입구 사거리에는 중장비들이 녹이 슨 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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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터줏대감들로부터 들어봤다.

인천남동공단에서 부동산중개업을 15년째 하고 있는 공인중개사 이현수(가명) 씨는 “지금은 다들 버티는 단계”라고 했다. 이 씨는 “공장 부지의 가격 조건이 맞으면 대부분 한달안에 나갔지만 지금은 소개받은 물건 중 6개월도 넘은 것도 있다”라고 했다.

공장 부지를 소유한 사장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임대해서 오더를 받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은 일감도 없고 임대료도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 씨는 “시대가 바뀐 것”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남동공단에 있는 대부분의 공장들은 사장 하나와 직원 2~3명으로 구성된 3·4차 협력사다. 철판 받아서 한번 휘어서 납품하고, 밸브 깎아서 올리는 구조다. 과거에는 이런 3·4차 협력사도 일감이 많았다.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는 것은 물론 중국, 동남아로 수출도 많았다.

이 씨는 “어지간한 부품 임가공은 중국이나 동남아도 다 할 수 있는데 굳이 한국에 주문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공단 가동률은 전국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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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단지공단의 ‘주요 국가산업단지 2019년 2월 단지별 가동률’을 살펴보면 서울부터 남동, 부평, 시화, 창원 등 37개 산업단지 중 북평과 구미, 포항단지를 제외한 모든 단지가 전월 대비 마이너스 가동률을 보였다. 특히 주안, 석문 산업단지는 전월대비 마이너스 12%포인트를 기록했다.

현장을 찾은 남동공단은 최대생산능력 3조7476억원이나, 2월 생산액은 2조4020억원에 불과했다. 가동률은 64.1%로 전월 대비 2.9%포인트 떨어졌다.

가동률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인천남동공단 입구 사거리에 기계 이동·설치업을 하는 대신중량 이보경 사장은 한편으로는 원청의 책임을 물었다.

이 사장은 “업체들은 원청 오더를 받으려고 수천만원씩 들여 기계를 들여오지만 일감 몇달 끝나면 그 기계는 그냥 놀리게된다. 가동률은 그래서 낮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인중개사 이 씨는 대금 결제에서도 원청의 책임을 물었다.

이 씨는 “정부에서 상생 얘기 많이 하면서 어음결제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있다. 3·4차 협력사한테는 2차 정도에서 한달 어음 끊으면 3차에서 3개월 어음 끊고, 그게 4차까지 오면 6개월 어음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청업체의 특성상 원재료, 중간소재가 되는 부품을 우선 납품하기 때문에 완성품업체인 1차 협력사에게 부품은 먼저 납품하고 대금은 가장 마지막에 받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을까. 기계 제작일을 20년 하고 쉬고 있다는 원성연 씨는 “그래도 공단은 돌아간다”고 했다.

원 씨는 “몇몇 정치인이나 언론에서 공단 다 망할 것 처럼 이야기하고, 사장들 다 죽어나가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면서 “최저임금 오르고 근로시간 단축돼 망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열심히 하려는 중소기업 사장들 심리만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장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뜨는 업종이 있으면 지는 것도 있다. 지금 이 공단에도 금속을 손으로 깎는 업종은 빠지지만 마스크팩, 레이저피부재생기 같은 걸 만드는 업체들이 들어온다. 최근 3일 동안 해당 업체의 라인을 깔아줬다. 그래도 공단은 돌아가니 기사를 좀 희망적으로 써달라”고 당부했다.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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