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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노란조끼는 시민의 행복찾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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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우리가 노트르담 성당이다."

지난 4월15일 프랑스의 상징이라고 하는 파리시 시테섬의 노트르담 성당이 불탔다. 종탑을 비롯한 성당의 본체는 가까스로 지켰지만 첨탑과 목조 지붕은 사라졌다. 불길에 싸인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에 말할 수 없는 비애가 번졌지만 그 뒤 성당을 재건하자는 움직임은 그 이상으로 활발했다. 루이뷔통의 2억유로 기부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10억유로의 기부금이 모였다. 해피엔딩? 그렇지 않다. 4월20일. 같은 하늘 아래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대의 23번째 시위는 바로 이 대기업의 기부금과 정부의 무능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도대체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 동안 우리의 생명을 건 요구에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우리가 불에 타서 죽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노트르담 성당이다.'


25만명의 사람들과 80% 이상의 지지. 노란 조끼 시위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그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의 수와 이 시위를 지지한 프랑스 사람들의 비율이다. 이 정도면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했는가? 유류세 인상은 그저 하나의 단초에 불과하다. 조직되지 않았고 리더도 없으며 일관된 구호도 없는 이들의 주장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불행하다." 프랑스의 경우 세금이 국내총생산(GDP)의 46.2%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제일 높다. 하지만 파리 외곽과 지방에 거주하는 일반적인 프랑스 시민들은 복지와 공공 서비스에서 지난 10년간 철저히 소외돼왔다. 더구나 실업 상태이거나 빈곤층에 속하기에 삶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낮다. 우울증이나 삶에 대한 회의 때문이 아니라 프랑스라는 나라가 만든 그 '구조'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시위대의 요구에서 공통되는 것은 이 구조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착각하지 말자. 프랑스 하층민의 기득권층에 대한 반발이라는 모호한 말로 포장하는 것은 이 운동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프랑스 중산층의 대다수도 이 구호에 심정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80%라는 지지율은 나올 수 없다. 또 이것이 단지 프랑스에 국한된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삶의 불행과 생활의 불편에 대해 국가와 사회의 구조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이 시대의 흐름이다. 영국을 혼돈으로 몰아넣은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도 이와 무관하지 않고,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밀레니얼 사회주의 흐름도 이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 위에 있다.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한 사람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예비 후보로 미국의 진보적 흐름을 대변한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지난해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조 크롤리 하원 원내의장을 예비선거에서 이기고 하원 의원에 당선된 30세의 여성이다. 이들로 대변되는 밀레니얼 사회주의의 구호는 단순하다. '한 나라의 부(富)를 재분배하라. 그리고 정치 권력, 자유, 자기 가치와 번영도 함께 재분배하라.'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무어라 말하는지 아는가? '예수도 난민이다.' 아니,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난민이니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모든 것을 나누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노란 조끼 운동이 지향하는 바는, 그러니,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이다. 단, 구조적으로. 노트르담 성당은 언젠가는 복원될 것이다. 그러나 하드웨어적인 성당만 복원되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일반 시민들의 소원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 복원은 제대로 된 복원이 될 수가 없다. 아, 사족 한마디. 당신,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노란 조끼 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행운을 빈다.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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