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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엄마, 이제 죄가 아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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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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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제 죄가 아니래요

저는 3녀 1남 중 장녀입니다. ‘1남’은 막내입니다. 다들 눈치채셨겠죠. “아들 낳으려고 그랬구나.”

임신중지에 대한 제 최초의 기억은 엄마입니다. 제가 중학생 때 엄마는 흘리듯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네 밑에 하나 더 있었어. 또 딸이라서 어쩔 수 없었지.” 엄마는 임신중지 경험을 이때 처음 이야기한 뒤 더 이상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저도 묻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제1259호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 기사를 쓰는 내내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기사를 마감한 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980년대 7남매 장남에게 시집와 ‘딸 딸’을 낳고 셋째마저 딸을 낳은 뒤, 엄마는 분만실에서 서럽게 울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라며 대를 이어야 한다는 압박, 맏며느리 노릇을 못했다는 자책, 그리고 또 낳아야 한다는 고통. 엄마는 그저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가진 아이가 또 딸이라는 말, 엄마는 임신중지를 선택했습니다. 아니, 사실상 강요받았습니다. 그리고 1년 뒤 결국 아들을 낳았습니다.

나(기자): 엄마, 임신중지했을 때 어땠어?

엄마: (말을 피하며) 뭘 어때, 그냥 그랬지.

나: 셋째도 딸을 낳고 그렇게 슬펐어?

엄마: 둘째까지 딸을 낳았을 땐 그러려니 했지. 근데 셋째도 딸이라고 하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 둘째랑 셋째한테 미안하긴 해. 아들처럼 키우면 그다음에 아들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걔네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다 커트 머리잖아. 너만 긴 머리였지.

나: 그때 임신중지가 죄인 줄 알았어?

엄마: 그땐 임신중지라고 안 했지. 낙태라고 했어. 그리고 그땐 보건소에서 수술하기도 했어. 엄마 친구들도 많이 했어.

나: 죄책감 들었어? 엄마: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흐릿한데… 속상하긴 했지. 다른 사람한텐 말도 못했고.

나: 엄마,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서 헌법 불합치 결정했어. 이젠 죄가 아니야. 엄마도 죄책감 갖지 마.

엄마: 다행이네, 정말.

이번에 낙태죄 폐지를 이끈 여성들 기사를 쓰면서,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저마다 임신중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제이는 고1 때 임신해 자퇴한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이유림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은 중학교 3학년 때 인근 학교 여학생이 임신 한 뒤, 남자친구와 다투다가 살해당한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엄마의 임신중지 경험에 대해 최근에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임신중지 경험은 엄마, 이모, 언니, 친구 등 어디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고백과 싸움이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를 통제하는 국가에서 벗어나도록 했습니다.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직 많은 논의가 남아 있지만, 낙태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닙니다. 더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마세요. 그리고 엄마도요.”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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