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시대를 거스른 영국 `최애 밴드` 스톤로지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쿨오브락-104]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12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당시 페스티벌은 관객 눈을 사로잡을 굵직한 밴드를 여럿 데려와 눈길을 끌었다. 그중 '메이드 인 영국' 인기밴드, 라디오헤드와 비디아이(Beady Eye)는 압권이었다. '크립(creep)'으로 유명한 라디오헤드는 록 팬들이 항상 보고 싶어하는 대표 밴드 중 하나다. 비디아이는 생소할 수 있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라 할 수 있는 오아시스의 후속격이다. 2009년 노엘 갤러거가 오아시스를 탈퇴하자 나머지 멤버들이 모여 만든 밴드다(오아시스 갤러거 형제의 불화는 유명하다. 서로가 서로를 질시하고 싸우며 오랜 기간 오아시스란 밴드를 끌고 왔다).

매일경제

스톤로지스 /사진=flic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공연 셋째 날 비디아이가 공연을 마치고 내려간 후였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대규모 외국인의 공습이 시작됐다. 특정 밴드를 보기 위해 모여든 팬들이었다. 이름값으로 치자면 떨어지지 않는 비디아이 공연은 마다하고 굳이 공연 이후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도 수상했다. 꾸역꾸역 몰려든 외국인은 거의 영국계 영어를 썼다. 그리고 이들은 왠지 모를 설렘에 가득 찬 것으로 보였다. 잠시 후 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밴드가 무대에 올랐다. 그들의 이름은 '스톤로지스(The Stone Roses)' 1983년 결성해 음반 두개를 내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밴드다. 사실상 족적을 남긴 음반은 데뷔 앨범 단 하나였다. 하지만 그 앨범이 워낙 명반이라 전설의 반열에 오른 밴드다.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에 신인으로 데뷔한 타자가 데뷔 첫 시즌 3할7푼의 타율, 홈런 60개쯤을 날리고 타점 150개를 돌파한 후 그해 신인왕과 MVP를 싹쓸이 한 뒤에 심각한 부상으로 신음하다 선수생활은 접은 케이스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첫해 남긴 성적이 워낙 기념비적인 것이었기에 남겨진 많은 사람이 그들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1996년 공식 해체한 이들은 2011년 멤버 중 한 명의 모친상에서 모인 것을 계기로 화해의 길로 접어들며 재결성을 발표한다. 공식 재결성 발표가 나온 것이 2011년 10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 내한 공연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어설프게 비유하자면 해체를 발표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시간이 한참 흘러 재결성을 발표한 뒤 스페인 공연 일정이 잡혀 출장길을 떠났는데, 스페인에 모든 한인들이 그 소식을 접하고 공연장에 모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날의 지산 록 페스티벌이 그런 분위기였다고 한다. 첫날 라디오헤드 공연 때는 미국인으로 득실대던 무대 앞이 스톤로지스가 나오자 싹 다 영국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스톤로지스가 영국인에게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톤로지스는 어떤 이에게는 청춘을 떠올리게 하던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하루 종일 골방에 틀어박혀 외로움을 달래던 친구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화창한 가을 날씨를 연상케 하는 행복이다. 그들의 활동기간이 너무나 짧았기에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 하나만으로 한국에 있는 영국인들이 총집결하는 상황이 연출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던 것이다.

매일경제

스톤로지스 /사진=flic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톤로지스는 축구로 유명한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다. 1983년 결성해 1989년 데뷔 앨범 '스톤로지스'를 내놨다. 보컬은 이언 브라운,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 베이시스트 개리 '매니' 마운필드, 드러머에 앨런 '레니' 렌의 라인업이었다. 이들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흔히 브릿팝으로 불리는 음악의 조상 격이다. 전성기 이들의 음악을 가리켜 매드체스터라 불렀다. 매드(Mad)와 맨체스터(Manchester)의 준말이다. 맨체스터에서 파생된 미친 사운드. 이들의 음악은 영국 전체를 강타하며 수많은 워너비 밴드를 만들어냈다. 잠시 얘기를 다시 2012년 지산으로 옮겨보자. 이들은 오아시스의 후속 밴드인 비디아이 다음 순서로 나와 열광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비디아이 멤버조차 스톤로지스 공연 당시 무대 앞으로 뛰쳐나와 팬의 입장으로 돌아갔을 정도였다. 실제 오아시스의 주축이었던 갤러거 형제는 스톤로지스의 팬이었다. 노엘 갤러거는 스톤로지스의 노래를 듣고 "그래 이건 나의 운명"이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회고한다. 리암 갤러거 역시 스톤로지스의 공연을 보고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술회한다.

이들이 스톤로지스의 진정한 팬인 것을 한번 더 알 수 있는 대목은 갤러거 형제 특유의 삐딱한 태도다. 스톤로지스 프런트맨인 이언 브라운의 무대 매너가 이랬다. 특유의 건들거리는 무대 매너, 거만해 보이는 표정은 갤러거 형제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아마도 이들은 스톤로지스를 좋아하다 못해 독특한 태도까지도 카피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스톤로지스의 음악을 하나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그들은 영국 특유의 우울한 사이키델릭 감성에 댄스 비트와 팝적이지만 독특하고 이채로운 기타 사운드, 여기에 얼터너티브 록이 섞여 들어간 묘한 느낌이다. 그들이 '브릿팝의 시조'라고 불리는 이유는 브릿팝으로 부를 수 있는 고유의 특성 모두가 그들의 데뷔 앨범에 한 자락씩 묻어있기 때문이다. '패스트 폴로어' 전략으로 좋은 것을 카피해 더 좋은 것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그보다 몇 배나 더 힘든 일이다. 스톤로지스가 아직까지 영국인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무에서 유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이 이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차트 순위를 보면 알 수 있다. 1989년 당시 이 앨범 차트 성적은 UK 기준 19위였다. 물론 훌륭한 성적이지만 압도적일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음반이 2004년 재발매된 이후 이들은 UK차트 9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5년 뒤 2009년 재발매판은 UK차트 5위에 올라가는 역주행 신화를 쓴다. 시간을 초월해 재발매판 인기가 앞선 앨범 인기를 올라가는 현상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데뷔 앨범은 '어떤 곡이 좋더라'를 판별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다 하나하나 의미가 있는 곡들이 담겨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곡이라 볼 수 있는 '아이 워너 비 어돌드(I Wanna Be Adored)'는 지금까지도 영국에서 널리 불리는 곡 중 하나다.

I don't have to sell my soul(난 내 영혼을 팔 필요 없어)

He's already in me(그는 이미 내 안에 있지)

I don't need to sell my soul(난 내 영혼을 팔 필요 없어)

He's already in me(그는 이미 내 안에 있으니까)

I want to be adored(난 사랑받고 싶어)

I want to be adored(난 숭배받고 싶어)

I don't have to sell my soul(난 내 영혼을 팔 필요 없어)

He's already in me(그는 이미 내 안에 있지)

I don't need to sell my soul(난 내 영혼을 팔 필요 없어)

He's already in me(그는 이미 내 안에 있어)

I want to be adored(난 사랑받고 싶어)

I want to be adored(난 숭배받고 싶어)

이렇게 단순한 가사가 반복되는 구조다. 특유의 징징거리는 기타사운드와 청아하게 찌르는 보컬, 단단한 베이스와 리듬감 있는 드럼이 단순함으로 무장한 명곡을 만든 셈이다. '워터폴(Waterfall)' '아이 앰 리서렉션(I Am the Resurrection)' 등 역시 아직까지도 절절하게 추앙되는 노래다. 특유의 자의식으로 가득 찬 이들의 허세는 당대 청년에게도 먹혔으며, 시대를 거슬러 그들의 음악을 아주 어렸을 때 들었던 영국 청년에게까지도 파급력이 있던 셈이었다. 다음은 'I Am the Resurrection'의 가사다. 'I Am the Resurrection'은 '나는 부활이다'라는 뜻이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그들은 예수의 멘트 한 자락을 빌려와 매우 무기력하고 신경질 적인 가사를 만들었다. 이런 시니컬한 감성이 영국인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던 셈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감성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모양이다.

Down down, you bring me down(아래로 아래로, 넌 날 아래로 잡아당겨)

I hear you knocking at my door and I can't sleep at night(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잠을 잘 수가 없어)

Your face, it has no place(너의 얼굴, 공간이 없어)

No room for you inside my house I need to be alone(내 집엔 네가 들어올 곳이 없어, 난 혼자이고 싶어)

Don't waste your words I don't need anything from you(괜히 입 아프게 떠들지마, 너한테서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어)

I don't care where you've been or what you plan to do(네가 어디 있었건, 무얼 할 생각이건 상관없어)

Turn turn, I wish you'd learn(돌아서 돌아서, 네가 그걸 알았으면 해)

I am the resurrection and I am the life(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니)

I couldn't ever bring myself to hate you as I'd like(난 네가 바라는 만큼 너를 증오할 수 없었어)

I am the resurrection and I am the life(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니)

I couldn't ever bring myself to hate you as I'd like(난 네가 바라는 만큼 너를 증오할 수 없었어)

후략

[홍장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