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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반대표 0건' 은행권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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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주요 은행 이사회서 '반대' 의사 0건

사외이사수 확대·주주추천 사외이사제 대안 거론

세계파이낸스

게티이미지뱅크


[세계파이낸스=오현승 기자] 주요 은행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지 한 달 여가 지났지만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둔 논란은 여전하다. 이사회에서 다루는 중요 안건 중 사외이사들의 반대 의견은 사실상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라서다. 은행들은 이사회 안건 상정 전 충분한 사전논의를 거친 결과라고설명하지만, 사외이사들이 사실상 '거수기' 역할만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 이사회 중요 안건 사실상 100% 찬성…견제 역할 유명무실?

사외이사는 대주주나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기업의 건전한 경영을 유도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IMF외환위기를 거치며 도입된지도 20년을 맞았다. 다만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외이사은행의 주주 및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기업·SC제일·한국씨티은행 등 주요 은행 7곳은 338건의 주요 의결사항을 표결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보류 안건 4건을 제외하곤 표결과정에서 반대표는 전무했다.

보류된 안건 4건은 하나은행의 '한국산업인력공단 주거래은행 입찰에 따른 출연금 등 제공(안) 승인', '글로벌 디지털금융 전략적제휴 협약 체결 승인' 건과 국민은행의 'The K 프로젝트 추진(안)', 'KB데이타시스템과의 거래 승인(안)'건 등이었다. 다만 해당 안건들 역시 자료 보충 및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라서 이후 열린 이사회에서 모두 통과됐다. 이들은 이사회에 '불참'하거나 '기권'하더라도 '반대' 의견은 좀처럼 내지 않는다.

은행들이 사외이사를 권력기관 출신 인사를 방패막이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주로 사법기관, 감독기관, 정부 부처를 거친 사외이사들을 일컫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법조, 금융, 재무, 소비자보호, 정보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있다. 특별한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사외이사들이 고액의 연봉만 챙기고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나온다. 4대 은행의 내놓은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KB국민은행은 4명의 사외이사에게 2억 5000만 원의 보수를 지급했다. 우리은행은 5명의 사외이사에 2억 5900만 원을, KEB하나은행은 7명의 사외이사에게 2억 7400만 원의 보수를 줬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4명의 사외이사에게 2억 5000만원의 보수를 지급했다.

◇"높은 찬성률은 사전협의 결과"…現 사외이사제 개선 절실

은행들은 사외이사들의 반대 의사 표시가 적은 이유에 대해 이사회 논의 전 중요 안건에 대해 사전협의회를 통해 의견 조율을 거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최근 이와 관련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달 정기주총 때 한 주주가 사외이사의 반대 의견이 없다는 점에 대해 묻자, "(사외이사는) 거수기가 아니다. 안건이 정상 상정되기 전에 사외이사들이 충분히 토론하고 의견 교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찬성 의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답변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도 "사외이사들이 각 분과위원회 활동을 통해 주요 안건들에 대해 사전 설명 및 논의를 거친다"며 "사외이사의 존재로 인해 통과가 어려울 안건은 애초에 이사회에 상정 전 걸러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은행권 안팎에선 현행 사외이사 제도를 손보기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

우선 사외이사의 수를 확대하는 추세도 주목된다. 특히 지난달 정기 주총에선 하나금융지주·신한금융지주·KB국민은행·DGB금융지주·JB금융지주 등이 지배구조의 건전성 강화 등을 이유로 사외이사의 수를 늘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외이사가 CEO나 경영진의 측근으로 선임되는 경우를 원천차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과거 국내 대형 금융지주사의 준법감시인을 지냈던 한 법조계 인사는 "사외이사진들이 회장이나 행장의 측근 인사들 중에서 선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외이사의 수를 늘리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한다거나 시민사회의 의견을 더 반영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사회의 견제 역할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노동이사제도 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은행 노동조합 등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경영에 참여시켜 경영진을 감시·견제하자는 얘기다. KB금융 노조와 기업은행 노조는 올 정기 주총에서 각각 주주추천, 노동자 추천방식으로 백승헌 변호사와 박창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바 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금융감독 혁신과제'에 근로자 추천 이사제를 포함시키며 원칙적으로는 찬성의 뜻을 밝혔다. 다만 윤 원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사외이사는 거수기라는 비판이 많은데, 회사에 대해 잘 알면서도 경영진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사회에 추가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아직 이른감은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반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업무계획 브리핑에서 "금융권 종사자의 급여·복지 수준으로 볼 때, 다른 분야보다 먼저 노동이사제를 도입할만큼 열악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거수기 논란을 줄이고자 주주제안 추천 인사를 사외이사 후보군에 포함시키는 곳도 있다. 일례로 KB금융지주는 과거 'KB사태'를 거친 직후인 지난 2015년 주주의 사외이사 예비후보 추천제를 도입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와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해 12월 한국금융학회 동계 정책심포지엄에서 '금융지주회사 이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일정 규모 이상의 금융회사들은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소액주주 추천 사외이사 1인 선임 의무화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분석했다. 또 이들은 "독립적이고 다양한 이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추가적인 통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 주주추천 이사제, 집중투표제 등이 권고할 만한 제도"라고 덧붙였다.

윤창현 교수는 사외이사 주주제안에 대해선 "수많은 주주 중 어느 주주의 제안을 받는 게 옳냐는 과제가 있지만 특별한 견해 및 전문성을 갖춘 제안에 대해 최대한 반영하는 식으로 절충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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