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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제본 전문가, 프랑스 '최고 匠人'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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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15년 경력 제본사 조용덕씨, 오래된 책에 '새 생명' 불어넣어

"종이의 따스함 사라지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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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본 분야 프랑스 국가 공인 명장(MOF)으로 선정된 조용덕씨가 파리 13구에 있는 자신의 공방에서 낡은 책의 표지를 떼어내 손질하고 있다. /조용덕씨 제공


"종이책에는 전자책이 흉내 내지 못하는 따스함이 담겨 있잖아요. 그 따뜻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아름답고 튼튼하게 책을 재탄생시키는 일이죠."

프랑스 파리에서 15년째 예술 제본을 하며 살아가는 조용덕(44)씨는 '생업을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책을 낱장별로 전부 뜯어내 다시 묶으면서 가죽이나 천으로 옷을 입힌다. 금박을 넣거나 색실을 꿰매 꾸미는 작업도 뒤따른다. 오래 두고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풀칠을 하고 말리면서 휘는 부분을 다시 펴는 작업을 반복하기 때문에 시간이 제법 걸린다. 한 권당 적게는 두 달, 길게는 여섯 달씩 걸린다.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올해 조씨는 프랑스 최고 장인(匠人)을 뜻하는 MOF(Meilleur Ouvrier de France)의 제본 분야 수상자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MOF는 프랑스 정부가 4년마다 200여개 전문 직업별로 심사를 거쳐 선정하는 국가 공인 명장을 말한다. 그는 4년 전 결선에 올랐다가 실패하고 재도전해서 MOF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13일(현지 시각) 소르본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MOF 메달을 받았다. 엘리제궁에서 열린 환영 리셉션에도 초대받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셀카'를 찍었다.

조씨의 손을 거쳐 재탄생한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 1484년에 제작된 책이라고 한다. 16세기에 라틴어가 아니라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쓰인 성경도 매만졌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오랜 경험이 담긴 고서(古書)를 만나면 손과 가슴이 떨릴 정도로 행복함을 느낀다"고 했다.

조씨는 종이책의 가치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10여년 전 전자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긴장하기도 했지만 3~4년 전부터는 오히려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손님은 다양하다. 결혼 10주년을 맞아 남편이 즐겨 보는 책을 제본해 달라고 하는 주부, 자신이 쓴 책에 가죽을 입혀 달라는 작가, 축하의 말이 담긴 결혼식 방명록을 꾸며 달라고 하는 신혼부부까지 각양각색이다. 최고급 염소 가죽을 씌우고 화려한 장식을 달면 제본 비용은 수백만원에 이른다. 새책을 제본해 달라는 요청도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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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덕(오른쪽)씨가 13일 엘리제궁 리셉션에 초대받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촬영한 '셀카'.


한국에서 원예학과를 나온 조용덕씨는 2002년 프랑스에 유학 와서 처음에는 캘리그래피(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를 배웠다. "캘리그래피도 재미있었지만 전문 자격증이 있는 분야로 눈을 돌리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2004년 우연히 책에서 제본을 하는 중세 수사(修士)를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 이게 내가 갈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손으로 만들고 그리고 붙이는 걸 좋아했거든요."

제본 공방에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2007년 제본 분야 프랑스 공인 자격증을 땄다. 지금은 파리 13구에서 동업 형태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MOF 수상자 중 한국인으로는 조씨 외에 아이스크림 분야에서 김영훈(38)씨가 함께 선정됐다. 김씨는 우리나라 노동부 선정 기능한국인 제과 1호인 '김영모과자점' 대표 김영모(66)씨의 아들이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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