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단독] 100년만에 드러난 알렌 公使의 '대한제국 X파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호러스 알렌

7년간 주한 미국 공사 지내며 쓴 고위 관료 97명 비밀 파일 공개

조선일보

'박제순과 함께 지난 20년간 가장 뛰어난 외부대신이란 평판이 있다. 황제의 말을 듣지 않아 결국 눈 밖에 났다.'(이완용)

구한말 최장기 주한 미국 공사를 지낸 호러스 알렌(1858~1932·작은 사진)이 재임 당시 작성한 대한제국 고위 관료 97명의 비밀 파일이 공개됐다. 1904년 일본 주선으로 대한제국 외교고문에 부임한 스티븐스에게 전달된 자료다. 건양대 알렌 연구단이 뉴욕 공립도서관이 소장한 알렌 문서를 정리하다가 발굴해 본지에 제공했다. 1884년 9월 첫 상주 선교사로 내한한 알렌은 갑신정변 때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면서 고종 신임을 얻어 왕실 주치의가 됐다. 주미 한국 공사관 서기관, 주한 미국 공사관 서기관, 주한 미국 공사로 승승장구하며 고종을 비롯한 고위 인사와 교류한 알렌이 작성한 비밀 파일엔 고위 관료들의 이력과 정파는 물론 성격과 장단점까지 담았다. 기울어가는 대한제국의 내막(內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1차 자료다.

알렌이 작성한 비밀 파일은 사람당 짧게는 한두 줄에서 대여섯 줄까지 영문 타이프라이터로 작성됐다. 친한파로 알려진 알렌이지만 인물 평가는 냉정하다. "나약하다" "잔인하다" "부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알렌의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지만 엘리트 집단의 부패와 나약이 망국(亡國)으로 가는 요인이 됐음을 보여준다.

조선일보

1885년 4월 창덕궁 부용지 주변을 걷고 있는 알렌 박사 부부(왼쪽에서 둘째와 셋째). 1884년 9월 내한한 알렌은 그해 말 갑신정변 때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면서 고종의 신임을 얻었다. /미국 위스콘신대 밀워키 도서관


파일에 등장하는 97명 중 16명이 민(閔)씨 일족이다. 첫 번째 인물은 군부·내부대신을 지낸 민영환. '예전엔 훌륭한 관료로 알려졌지만 최근엔 좀 실망스럽다.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다. 표면적으로 민씨 일족의 우두머리다.' 민영환이 1905년 을사조약에 반대해 자결하기 이전에 작성돼 부정적이다. 고종 측근 이용익은 '용감하지만 매우 잔인하고 억압적이다. 지난 20년 동안 고위 관료 중 가장 무식하다'고 썼다. 법부대신을 지낸 고종 측근 이유인은 '점쟁이'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밝히며 '끔찍하게 잔인하다'고 썼다. 동학혁명 당시 병조판서를 지낸 민영휘에 대해선 '1886년 무일푼이었는데, 최악의 착취자로 돈을 끌어모아 부자가 됐다'고 썼다.

'을사오적'에 대해선 비판과 함께 우호적 평가도 나온다. 이완용을 '판단력이 뛰어나고 용기도 있다. (1897년) 러시아 교관 158명 초빙 건을 반대했고, 러시아 압력으로 사임했다'고 썼다. 박제순은 '강직하고 명예롭고 좋은 사람이다. 아이디어가 많다. 의지가 강하고 용기가 있다. 뛰어난 주청(駐淸) 공사였고, 중국어를 할 줄 안다. 다소 보수적이다'라고 평했다. 권중현은 '한국인들에게 신뢰받지 못한다. 현재 일본에 대한 호감이 있는 것 같다. 똑똑하나 조심스럽게 다루면 유용하다'고 했고, 이지용은 '부친이 황제의 사촌이다. 상당히 심약하다'며 내부자만이 알 수 있는 정보를 담았다. 이근택에 대해서도 '이용익의 정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용익과 비슷한 성격과 자질을 갖고 있는데, 다른 점은 그는 양반 출신이고, 이용익은 노동자 출신이다'라고 했다.

조선일보

알렌이 1904년 작성한 비밀 파일 첫 장. ‘스티븐스를 위해 비밀리에 작성했다’고 작성 경위를 손으로 썼다. /건양대 알렌연구단


고종에 대한 인물평은 이 비밀 파일엔 없다. 하지만 알렌이 쓴 편지에 고종의 성격에 대한 대목이 나온다. 고종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알렌에게 1만달러를 주며 미국의 유능한 변호사를 구해 조약이 불법적이고 부당하다는 점을 밝혀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알렌은 '한국인들은 약속을 곧잘 하지만 약속을 지키는 데는 취약하며, 고종은 끔찍할 만큼 나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그를 손쉽게 협박할 수 있다'(1905년 12월 14일 알렌이 전 육군 소장 윌슨에게 보낸 편지)고 썼다. 고종이 버텼으면 조약 체결은 어려웠는데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종 시대사 연구자인 장영숙 상명대 교수는 "알렌 문서는 국내에 일부만 소개됐을 뿐 이 비밀 파일은 연구자들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알렌 문서를 연구 중인 김현숙 건양대 교수는 "스티븐스는 알렌의 비밀 파일을 바탕으로 조선의 관료들을 파악하고 보호국화를 실현하는 데 활용한 것 같다"면서 "알렌과 이 인물들과의 관계는 물론 당시 각 인물의 역할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파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알렌은 발명왕?… 美서 '온돌 난방' 객차 특허 시도]

조선일보

알렌이 1887년 조선서 체험한 온돌을 열차 난방에 적용해 설계한 온돌 열차 도면이다. /건양대 알렌연구단


의료 선교사이자 외교관이었던 알렌이 '발명가'였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알렌 문서엔 알렌이 1887년 전후 6건의 신(新)기술을 개발, 미국에서 특허를 받기 위해 노력한 기록이 나온다.

가장 눈길을 끄는 발명은 온돌 난방 객차. 알렌은 1887년 9월 10일 뉴욕의 한 특허회사(Munn & Co)에 보낸 편지에서 조선의 난방 시스템인 온돌을 활용한 난방 객차 도면과 작동 원리를 설명한 명세서를 첨부했다. 알렌은 이 회사가 기술 개발에 나서 특허를 출원해주면 향후 수익을 나누겠다고 제안했다. 압축공기 실린더 저장 장치, 압축공기를 이용한 풍차, 전차 출발을 위한 장치, 전차 브레이크 부속 장치, 철도 스위치 등 나머지 5건도 기차와 관련된 발명이 대부분이다. 건양대 알렌연구단은 알렌이 실제로 특허를 받았는지 여부는 확인 중이라고 했다.

☞알렌 문서

알렌은 1924년 한국과 관련해 생산·수집한 모든 기록물을 뉴욕 공립도서관에 기증했다. 자료를 쌓아 놓고 높이를 쟀더니 2.74m였다고 한다. 알렌이 쓴 서한, 문서 및 보고서, 공사관 회계 문서와 사진, 지도 등이다. 마이크로필름으로만 공개된 데다 해상도가 떨어지고 악필로 소문난 알렌의 필체 때문에 학자들도 제대로 연구하지 못했다. 건양대 알렌연구단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업 일환으로 2016년 9월부터 3년간 알렌 문서 DB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