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직권남용 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박찬주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왼쪽)과 이재명 경기지사. |
최근 법조계에서는 2개의 ‘무죄’ 사건이 화제다. 지난달 29일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된 박찬주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의 공관병 갑질 사건, 그리고 지난 16일 법원이 무죄선고 한 이재명 경기지사의 친형 강제입원 의혹이다.
두 사람은 똑같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았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 권한을 남용해 남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만들 경우 성립하는 죄다.
모과 깎고 골프공 줍고…”사령관의 직권 아니라서“
왜 검찰은 박 전 사령관을 재판에조차 넘기지 않았을까. 박 전 사령관의 불기소 처분서에 검찰은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아닌 그런 지시들이 형식상ㆍ외형상 직무수행으로 인식될 것을 전제로 한다“며 ”박찬주의 지시는 사령관의 일반적 권한 범위 내의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고 적었다.
직권남용죄는 고유한 ‘직권’을 휘둘렀을 때만 성립한다. 예컨대 검사는 고유 권한인 수사권을 부당하게 휘둘러야만 하고, 기재부 장관이면 예산 배정에 특혜를 주는 식이어야 한다. 모과를 깍게 하는 등의 갑질은 ‘나쁜 짓’이긴 해도 누가 봐도 육군 사령관의 직무와는 관련이 없으니 ‘직권남용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재명 친형 입원, 직권은 맞으나 ‘남용’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지사 사건을 맡은 법원은 ”정당한 직무 범위 내의 일“이라고 봤다. 성남시장이었던 이 지사는 의사에 정신질환자 진단을 요구할 권한이 있었는데, 친형이 실제로 정신병을 의심케하는 증상을 보였으니 직권을 ‘남용’한 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강제입원 절차를 다소 무리하게 진행한 것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거나 비난을 받을 소지는 있다“면서도 범죄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어디서 많이 본 ‘남용할 직권이 없다’ 논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심사를 마치고 검찰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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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나 죄는 아니다’라는 태도 역시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에서 이미 내세웠던 주장이다.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 심사 당시 변호인은 “수백 페이지의 영장 청구서를 읽어보니 그냥 양승태 사법부의 권한 남용 사례를 나열해놓은 백서 같다”며 양승태 사법부가 비난을 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법적으로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떄문에 법조계에서는 박 전 사령관과 이 지사 사례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법원에서 직권남용죄의 직무범위와 남용에 대해 좁게 해석하는 기조를 이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화이트리스트’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경우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으니 이 지사의 경우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과 별개로 법조계에서는 직권남용죄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열린 한국범죄방지재단은 직권남용죄를 주제로 학술 강연회를 열었다. 부천지청장 출신 이완규 변호사는 “직권의 범위를 한정하고 남용행위도 사익적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성돈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직권남용죄도 시대정신에 따라 적용 대상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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