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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언어번역기] ‘좌파독재’는 누구를 향한 낙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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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의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고 안종필씨의 묘역에서 고인의 모친 이정임씨를 위로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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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때 아닌 ‘독재 논쟁’이 벌어졌다. ‘독재’란 단어는 민주화 이후, 그것도 21세기 들어 오랜만의 출현이다.

진앙은 자유한국당이다. 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좌파독재”라고 몰아붙이며, 원내투쟁과 장외집회에서 연일 부르짖고 있다. 이에 문 대통령 역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ㆍ18을 다르게 볼 수가 없다”고 맞받아쳤다. ‘진짜 독재는 한국당의 전신 정권 아니냐’는 의미다.

◇한국당 ‘좌파독재’ 구호의 속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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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가운데)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17일 대전에서 장외집회를 열어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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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의 좌파독재 주장은 낙인효과를 노린 것이다. 낙인효과는 정치권에서 상대 진영에 공세를 펼 때 흔하게 활용하는 정치언어 전략이다. 부정적인 이미지의 단어로 공격하고자 하는 상대를 규정하고, 이를 반복해 강화시키는 수법이다. 낙인효과를 노린 정치언어들은 그래서 대부분 입에 착착 달라붙는 단어의 조합이다.

낙인효과를 가장 잘 활용한 정치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그것마저도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작품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한나라당(현 한국당) 대표 시절, ‘대연정’을 제안한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으로, 이어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정부의 정책 노선을 비판한 당시 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을 “배신의 정치”라고 낙인 찍은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한국당이 문 대통령을 낙인 찍으려고 만든 좌파독재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독재에다가 좌파라는 해묵은 색깔론까지 덧칠해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 두 단어가 잘 어울리지 않는 건 왜일까.

그간 독재는 우파의 전유물이었다. 부정선거, 개헌, 군사쿠데타로 집권 연장을 꿈꾸거나 동조했던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은 모두 우파였다. 쉽게 생각해, ‘독재=우파’였기에 ‘우파독재’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당이 아무리 ‘좌파독재’를 부르짖은들 좌파독재의 반대말이 우파독재가 될 수는 없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의 상대적 개념을 굳이 끌고 오지 않더라도 이는 우리의 역사가 준 경험칙이다. 이를 뒤엎고 낙인을 찍어야 하니 한국당이 부득이 ‘좌파독재’란 신조어를 만든 것 아닐까.

◇독재가 우파의 전유물이라는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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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왼쪽부터) 전 대통령은 모두 공과 과가 있지만, 가장 큰 과오는 독재자 또는 독재의 동조자라는 점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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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당의 좌파독재 낙인이 문 대통령을 향한 것인지, 거꾸로 ‘독재의 대명사는 우파’임을 재확인 시켜 자신들을 향한 낙인을 찍게 될지 말이다.

문 대통령이 한국당을 향해 “독재자의 후예”라고 새삼 각인시킨 건, 바로 이를 상기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나아가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눈 독재정권이 짓밟은 민주주의와 인권, 이를 반성하기는커녕 부정하는 후신 정당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낙인효과가 언제까지 정치공세의 언어로 효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의문이다. 과거처럼 우리 국민이 수가 낮은 낙인의 정치언어에 쉽게 세뇌 당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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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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