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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100㎞로 횡단보도 덮친 87세, 지팡이 짚고 나타나 日 경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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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축없이 걷지도 못하면서 운전이라니"

지난달 도쿄서 12명 사상 사고 일으켜

사고 한 달 만 양 손 지팡이들고 나타나

"작년 가을 넘어지는 사고로 다리 다쳐"

일본내 '고령자 운전 위험' 경각심 증가

사고 발생 뒤 자발적 면허 반납건 급증

"죄송하지만 손을 좀 잡아주세요. 좀 도와줄 수 없나요?"

택시에서 내린 87세 남성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중앙일보

지난달 19일 시속 100km의 스피드로 횡단보도를 덮쳐 사망사고를 낸 87세 운전자 이즈카 고지가 지난 18일 경찰에 출두했다. 양손에 지팡이를 들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TV아사히 방송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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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 모두에 지팡이를 짚고 발을 질질 끌면서 겨우 발걸음을 옮기던 남성이 경찰서 현관을 가득 메운 기자들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찰서 현관 앞, 높이가 불과 14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턱을 오르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도 오를 수 있도록 이 턱에는 경사면(슬로프)이 설치돼 있었지만 남성에겐 이마저도 버거웠다. 그는 경찰관의 도움을 받고서야 경찰서 현관으로 겨우 들어섰다.

일본의 TV 뉴스들이 지난 18일 집중적으로 보도한 이 짧은 장면에 일본 열도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87세의 이즈카 고조(飯塚幸三) 전 경제산업성 공업기술원장이 도쿄 메지로(目白)경찰서에 출두하는 장면이다.

그는 지난달 19일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에서 승용차를 몰다 시속 100km에 가까운 속도로 횡단보도를 덮쳐 12명의 사상자(2명 사망,10명 중경상)를 냈다.

이 사고로 아내(31)와 딸(3)을 잃은 32세 남성이 "조금이라도 운전을 하는 게 불안하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면서 이 사고는 일본 사회에 고령자 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그런데 사고 뒤 처음으로 나타난 가해자의 모습이 일본 열도에 충격을 배가시켰다.

그동안 갈비뼈 손상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던 운전자가 사고 뒤 처음으로 경찰에 출두하면서다.

TV아사히는 지인들의 말을 인용해 “이즈카가 지난해 가을쯤 넘어져 오른 다리를 다친 뒤 지팡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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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시속 100km의 스피드로 횡단보도를 덮쳐 사망사고를 낸 87세 운전자 이즈카 고지가 지난 18일 경찰에 출두했지만 경찰서 현관앞의 14cm 턱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TV아사히 방송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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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두 개에 의지해 타인의 도움 없이는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가해자의 모습에 일본 국민들 사이에선 "어떻게 저런 몸 상태로 운전했느냐", "저런 사람들이 매일 운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섭다"는 격앙된 반응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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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시속 100km의 스피드로 횡단보도를 덮쳐 사망사고를 낸 87세 운전자 이즈카 고지가 지난 18일 경찰에 출두했다. 양손에 지팡이를 들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TV아사히 방송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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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아사히에 따르면 이즈카는 자신이 사고를 낸 건 인정하면서도 "몇 차례나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작동하지 않았다","엑셀에서 발을 뗐지만, 페달이 눌린 채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브레이크나 엑셀의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은 차체 이상보다 과실 운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날 5시간 30분가량 경찰 조사를 받은 이즈카는 출두 전후 “(피해자들에게) 면목이 없다”는 말을 몇 차례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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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시속 100km의 스피드로 횡단보도를 덮쳐 사망사고를 낸 87세 운전자 이즈카 고지가 지난 18일 경찰에 출두했다. 양손에 지팡이를 들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TV아사히 방송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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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족 측에 직접 사과를 전달하려 했지만 거부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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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에서 87세 고령자가 운전하는 승용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들을 치어 사상자가 난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경찰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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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딸을 잃은 남성은 기자회견에서 "사고 당시의 상황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사죄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며 “아내와 딸의 미래를 한순간에 빼앗은 운전자를 엄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날이 갈수록 절망감은 커진다. 매일 '살아있는 지옥'과 같은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는 이 남성의 절규에 일본 사회는 연일 슬픔을 쏟아내고 있다.

이케부쿠로의 사고 현장에도 꽃과 과자, 음료수를 들고 찾아와 명복을 비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일본에선 고령자들의 자발적인 운전면허 반납 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4월 3째주(15~19일) 도쿄도 내에서의 면허 반납 건수는 1000건이었지만, 사고 발생 직후인 22~26일주엔 1200건, 5월 6~10일 주엔 1600건으로 늘었다고 일본 언론들은 보도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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