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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켑카는 어떻게 메이저 사냥꾼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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켑카는 최근 그가 참가한 8개 메이저대회에서 4승을 거뒀다. 일반 대회를 제외하고 메이저 우승으로만 보면 타이거 우즈에 비견된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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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스 켑카(29·미국)가 20일(한국시간) PGA 챔피언십에서 더스틴 존슨(미국)을 2타 차로 꺾고 우승했다. 켑카는 세계랭킹 1위가 됐고 참가한 최근 8개 메이저 대회에서 4승을 했다. 이런 성과를 낸 선수는 벤 호건,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뿐이었다. 아직 20대인 켑카는 더욱 무서운 선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켑카는 매우 특이한 선수다. 그는 일반 PGA 투어 대회 96경기에 나가 2승(2%)에 그쳤다. 평범한 기록이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가 되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22경기에 나가 4승(18%)을 했다.

메이저 대회는 일반 대회보다 우승하기 훨씬 어렵다. 뛰어난 선수가 빠짐없이 참가하고, 코스는 어려우며, 부담감은 심하다. 일반 PGA 투어 9승을 하고 메이저 우승컵이 없는 매트 쿠차처럼 메이저 우승 없이 선수생활을 끝내는 선수가 부지기수다. 켑카는 거꾸로 메이저 대회가 훨씬 쉽다.

그가 메이저에서 강한 이유는 뭘까. 켑카는 긴 메이저 대회의 전장을 정복할 수 있는 장타를 친다. 이번 대회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는 313야드, 마지막 날에는 344야드를 쳤다.

어려울수록 더 돋보이는 스타일

장타자치고는 정교하다. 1, 2라운드 켑카와 한 조로 경기한 타이거 우즈는 “340야드씩 페어웨이 가운데로 보내는 선수를 이기기는 어렵다. 다른 선수들은 5번 아이언을 칠 때 9번 아이언을 치기 때문에 러프에서도 경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스가 어려울수록 켑카는 더 두각을 나타낸다. 헨릭 스텐손은 “러프가 짧아 드라이버가 빗나가도 누구나 헤쳐 나갈 수 있는 코스에서는 켑카의 장점이 두드러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평범한 대회에서는 퍼트감이 좋은 선수가 우승할 가능성이 있다.

메이저 중에서도 코스를 어렵게 만드는 US오픈에서 켑카가 2번 우승하고, “극단적으로 어렵다” 경고장이 붙은 베스페이지에서 PGA 챔피언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켑카는 베스페이지 블랙의 긴 러프에서 공을 그린에 세워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에 대한 질문에 켑카는 “그러려고 헬스클럽에 다녔다”고 했다. 그는 풋볼 라인맨처럼 허벅지가 굵고, 어깨는 떡 벌어졌다. 더스틴 존슨과 한 헬스클럽에서 둘은 “너는 꼬마처럼 그 정도 무게밖에 못 드느냐”고 놀리면서 경쟁적으로 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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켑카가 긴 러프에서 샷을 하고 있다. 근육질의 켑카는 러프에서도 공을 그린에 세웠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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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비슷하지만 켑카와 존슨의 기록은 완전히 다르다. 존슨은 비 메이저에 강한 선수다. 일반 대회 19승에 메이저는 단 1승에 불과하다.

"불평하면 스스로를 경쟁에서 배제하는 것"

켑카는 정신력도 몸처럼 강하다. 지난해 시네콕힐스에서 벌어진 US오픈에서다. 선수들은 그린이 너무 딱딱해 공을 세우기 어렵다고 불평을 했다. 필 미켈슨은 짜증이 나 그린에서 굴러가는 공을 치기도 했다. 켑카는 “어렵다 불평하면 스스로 우승 경쟁에서 배제하는 것”이라면서 “코스는 어려울수록 좋다”고 했다. 전성기 잭 니클라우스가 그랬다.

“나는 심리치료사가 필요 없다”고 켑카는 말한다. 매번 한 샷 한 샷만 단순하게 생각한다. 켑카는대학시절 어머니의 암 투병을 지켜봤다. 켑카는 “시간은 빨리 흐른다. 그러니 즐기고, 주위 사람들을 웃게 하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20일 PGA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역전 위기에 몰렸지만 그는 "실패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력을 희생하지 않는다. 켑카는 2016년 나이키가 철수한 후 새 용품계약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장비를 마음껏 쓰고 싶어서 큰돈을 포기했다. 광고 촬영 등으로 들이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

SNS도 거의 하지 않는다. 팔로워가 없고 인기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쓸데없는 잡음에 휘둘리기 싫어하는 고독한 메이저 사냥꾼이다.

그는 1년에 4번 메이저대회가 열릴 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몸을 만들고 스케줄을 조정한다. 타이거 우즈가 전성기에 그랬다. 켑카는 몸 관리를 위해 개인 요리사를 쓴다.

빨리 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켑카는 대학 졸업 후 유럽 2부 투어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아마추어 시절 최고 엘리트는 아니었다. 프로가 되서는 험한 길을 돌아왔다. 켑카는 “유럽 2부 투어에서 전 세계 오지를 돌아다니면서 배운 것들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래서 켑카의 동생도 유럽 2부 투어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켑카는 25세인 2015년 PGA 투어에 입성했다. 2년 만에 메이저 우승자가 되고 4년 만에 세계 최고 선수가 됐다. 그는 빨리 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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