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주제 오페라 ‘쪽빛의 노래’ 총감독, 테너 임정현씨
백기완 연작시 바탕 2년간 준비…24·25일 KBS홀에서 공연
선친의 민주화운동에 영향…이소선합창단서 지휘자 활동도
임정현 총감독은 지난 15일 ‘세월호 레퀴엠’ <쪽빛의 노래>를 만들어온 지난 여정을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몸부림”이라고 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은빛 머리칼을 질끈 묶고 길 위에서 지휘를 하는 사람. 파인텍 고공농성장, 쌍용차 희생자의 분향소 앞, 고 김용균씨의 추모문화제…. 투쟁의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다. 이소선합창단을 이끄는 테너 임정현씨(55)다.
2004년 귀국 이후 성악가이자 공연 제작자로서 오페라 <라보엠>과 <나비부인>, 동학을 소재로 한 <금강 칸타타> 등을 개작해 무대에 올렸다. 이번엔 세월호를 주제로 한 공연이다. 오는 24~25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창작음악극 <쪽빛의 노래>를 기획했다.
2014년 4월16일의 대참사를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사명감으로 기록한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의 연습실에서 만난 임 총감독은 <쪽빛의 노래>를 만들어온 2년여간의 여정을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몸부림”이라고 했다.
백기완 선생의 세월호 추모 연작시 ‘갯비나리’에 작곡가 신동일씨가 곡을 붙였다. 시가 나오는 데 1년, 전통가락을 섞어 음악을 만드는 데 또다시 1년이 걸렸다. 본격적으로 공연의 형태를 다듬은 건 올 초부터다. 50인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80명, 솔리스트와 연극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국가폭력을 고발하고, 슬퍼한 모든 사람을 위로하는 ‘세월호 레퀴엠’을 내놓고자 했습니다.”
임 총감독은 <쪽빛의 노래>를 가톨릭 미사에 쓰이는 종교음악 형식 ‘레퀴엠’에 빗댔다.
“레퀴엠은 원래 ‘안식’이라는 뜻이에요. 신부님들은 이 말 속에 ‘평화를 구하는 느낌’이 들어가 있다고들 하지요.”
서울예고 1학년일 때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을 비판하고 학살의 진상을 알리고자 애쓰던 아버지 임기윤 목사는 그해 7월 부산 보안사 사무실에서 조사를 받다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다. 2년 후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클래식 전공에 회의만 들었다고 한다.
“그때는 거의 음악을 포기했어요. ‘이런 노래로 세상을 구원하는 말 한마디라도 할 수 있나’ 싶었지요.”
시위에 나가 최루탄을 맞고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졸업 후에는 구로를 비롯한 노동현장을 돌며 노조를 조직하고 노래를 가르쳤다. “소리를 찾으러” 유학길에 오른 것은 서른이 훌쩍 넘은 때의 일이다. 폴란드와 독일, 이탈리아에서 만 8년을 수학하고 돌아왔다.
‘정말 멋진 노동자합창단 하나 만들면 좋겠다.’ 20대에 품은 꿈은 쉰 즈음에 이뤘다. 2011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별세하자 양대노총 노동자들이 모여 영결식에서 부를 ‘님을 위한 행진곡’을 밤새 연습한 게 계기가 됐다. 노래를 가르치러 갔던 그는 대표를 맡아 지금까지 이소선합창단을 지휘한다.
이소선합창단은 세월호 참사 이후 매년 추모곡을 냈다. 1주기 때 ‘어느 별이 되었을까’, 2주기 때 ‘너의 졸업식’을 만들어 불렀고, 3주기 때 만든 ‘쪽빛의 노래’가 이 공연의 출발점이 됐다.
“ ‘잊지 않을게’라고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예술로 하는 게 저의 몫이니까요.”
4월에만 반짝 부르고 잊히는 곡이 아니라, 오래오래 음악회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단 결심이 그때 섰다고 한다. 세월호 유가족을 포함해 416명의 제작위원을 모아 공연을 준비했다.
그에게 ‘노동자가 무슨 클래식 음악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노동자가 비싼 표를 사서 공연을 봐야 하나’ 하는 반응도 가끔 접한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이 만든 기반에서 이뤄진 거예요. 이 자긍심으로 문화적·예술적 수준도 같이 높여간다면 우리가 원하는 ‘아름다운 세상’에 더 가까워진다 생각합니다.” 그도 이번 공연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한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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