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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오래 전 ‘이날’]5월21일 ‘술 먹이고, 연못에 빠뜨리고’...사람 잡는 대학가 ‘악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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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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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21일 ‘술 먹이고, 연못에 빠뜨리고’...사람 잡는 대학가 ‘악습’

대학가의 ‘악습’이 사회문제화 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도 아닙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요즘도 자신이 속한 학과의 ‘군기 문화’, ‘폭행’, ‘갑질’ 등에 대한 제보가 끊이질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 폭로가 ‘경찰 조사’로 이어진 경우도 많습니다. 오래전 대학을 다닌 이들이 보면 “지성의 전당 대학이 어쩌다 이렇게 됐냐”며 안타까워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대학가의 ‘악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악습’의 유형이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을 뿐, ‘상대를 괴롭힌다’는 본질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20년 전 오늘, 경향신문 사회면에 실렸습니다.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대학가의 ‘술 문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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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대학가의 비상식적인 술 문화 사례를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고려대의 한 동아리는 매년 여름 연수 기간에 일명 ‘죽음의 게임’을 벌인다. 노래를 함께 부르다 ‘게임 오브 더 데스’라는 외침과 동시에 술래로부터 지목된 사람은 종이컵에 가득 담긴 술을 단숨에 해치워야 하는 게 규칙이다”라고 소개합니다. 죽음의 게임에 참가했던 한 학생의 소감도 나옵니다. “밤새 진행되는 이 게임이 끝날 무렵이면 제정신인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모두가 후회할 일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경희대의 한 봉사동아리 사례도 있습니다. 해당 동아리에서는 먼저 4학년이 3학년 ‘소주잔’에 술을 따라줍니다. 이어 3학년이 2학년에게 소주를 부어주는데 이때 잔은 ‘맥주잔’으로 커진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내려가다 보면 1학년은 ‘냉면 그릇’에 소주를 부어 먹게 된다고 합니다. 일명 ‘내림주 의식’입니다.

단순히 술만 먹으면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경희대의 또 다른 동아리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대강당을 빌려서 큰 소리로 자기소개를 시킨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선배들이 주로 애인과의 관계 등 사생활과 관련된 난처한 질문들을 퍼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악습’도 있습니다. 서울대에서는 축제 때면 학생들을 학내에 있는 연못인 ‘자하연’에 빠뜨리는 행사를 열었다고 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예전에는 물가에서 밀어 넣었으나 지금은 높이 4m 가량의 다리 위에서 팔다리를 붙잡고 던지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악습’은 국민대 교내 인공연못인 ‘용두리 폭포’, 건국대 ‘일감호’, 연세대 분수 등에서도 진행됐다고 합니다. 주로 학생회장이나 과대표 당선자, 생일을 맞은 친구들을 빠뜨렸다고 합니다.

상상만 해봐도 굉장히 위험한 일 같은데요. 실제 사고도 발생했습니다. 서울대의 한 동아리에서 새로 뽑힌 동아리 회장을 교내 연못인 ‘자하연’에 빠뜨렸다가 익사사고가 발생한 것인데요. 안타까운 것은 물에 빠진 회장을 구하기 위해 연못에 뛰어들었던 학생 1명도 숨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악습’ 때문에 대학생 2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당시 서울대 학생생활 연구소 김창민 교수는 “낭만적이고 정열적인 자세도 대학생활에 좋지만 도를 지나치는 것은 문제”라며 “대학생활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전통을 만들어 가도록 학생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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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의 ‘악습’은 종종 ‘낭만’으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5월 교육부는 국세청의 협조 요청을 받아 ‘대학생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 준수 안내 협조’ 공문을 각 대학에 보냈습니다. 쉽게 말해 대학 축제 기간 동안 학생들이 ‘술 판매’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 같은 조치에 ‘실질적 단속’도 어렵고 ‘예방효과’도 미미한데 학생들의 ‘반발심’만 키우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었는데요. 그로부터 1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돌아온 5월, 대학가 축제는 어떤 모습일까요?

▶관련기사-'대학축제 주류 판매 금지'조치···"졸속 행정"vs"법 대로"


술 판매가 금지되자 학생들은 대학 인근에 있는 편의점 등에서 술을 직접 사다 캠퍼스에서 마셨다고 합니다. 원활한 술 공급을 위해 손수레부터 술을 대신 사다 주는 심부름꾼까지 온갖 방법이 동원됐다고 하는데요. 덕분에 대학 주변 편의점과 마트 등이 때아닌 호황을 누린다고 합니다.

사실, ‘성인’인 대학생이 술을 마시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술’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 가능성을 대학생들 스스로 경계해야 합니다. 대학가 ‘악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술 판매를 금지시킨 교육부 조치를 비웃 듯 학생들은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결국 국가의 조치로는 음성적인 ‘악습’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성인’인 대학생들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더 이상 대학가 ‘악습’으로 피해 입는 학생들은 없어야 합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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