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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사건추적]60대 주취자는 왜 인천의료원 옆 공원에서 사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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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오후 4시 50분쯤 인천 서구 석남동 골목길에서 술에 취해 잠든 채모(62)씨가 구급차에 실려 인천광역시의료원(인천의료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응급실 침대에서 1시간 정도 잠들었던 채씨가 깨자 의료진은 그를 응급환자가 아닌 주취자로 판단했다. 인천의료원 경비원 2명은 휠체어에 채씨를 태워 응급실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공원 벤치에 내려놨다. 다음날 오전 6시 30분 채씨는 공원 벤치에서 저체온증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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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21일 오전 6시30분 숨진 채씨가 발견된 공원 벤치(왼쪽). 30m 뒤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편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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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회로(CC)TV 등으로 채씨의 행적을 수사하던 경찰은 인천의료원 측이 채씨에 대한 진료 의무를 다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봤다. 휠체어를 탄 채씨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지는데도 경비원들이 공원으로 데려간 점, 채씨의 바지 주머니에 이름과 주소가 쓰인 우편물이 있었는데도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은 점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3월 의료법 위반과 유기치사 혐의 등으로 의료진과 경비원을 포함해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의료진이 채씨와 일부 노숙자들을 진료했음에도 진료차트를 쓰지 않았고, 의료진과 경비원이 술에 취한 채씨를 외부로 보낸 사실을 고려했다. 채씨를 휠체어에 태워 옮긴 경비원들은 경찰 조사에서 “응급실 당직 의사의 지시를 받아 채씨를 공원으로 내보냈다”고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채씨의 유족은 현재 의료원 측을 상대로 소송을 검토 중이다.

인천의료원 측은 채씨가 강하게 귀가 의사를 표시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인천의료원 관계자는 “채씨가 집으로 간다기에 버스정류장으로 안내했는데 본인이 ‘공원 벤치에서 쉬었다 가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실제 경찰이 인천의료원 압수수색으로 입수한 근무일지에는 환자들을 공원이나 버스 정류장으로 내보내는 행위가 ‘안내’라고 표시돼 있었다고 한다.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제 역할 못 해



2014년 인천의료원은 인천지방경찰청과 협의해 응급실 내부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열었다. 경찰관이 응급실에 24시간 상주하며 의료진과 협의해 주취자를 보호하고 치료하는 곳이다. 관련 지침에 따르면 응급실 상주 경찰관은 만취자 중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사람을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로 보내고 주취자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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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료원 응급실 내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내부. 편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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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료원 측에 따르면 채씨가 숨진 당일에도 인천 서부경찰서 경찰관 1명이 응급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채씨는 경찰관에 인계되지 않았다. 해당 경찰관은 채씨가 도착했을 때 상태를 확인했으나 귀가 조처 당시에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인천의료원 관계자는 채씨를 경찰관에게 인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본인이 집에 가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당시 상황으로는 돌려보내도 문제가 없다는 의학적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응급실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모든 주취자 자료를 응급의료센터에 넘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진료 없이 돌려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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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의료원 응급실 전경. 채씨는 올해 1월 20일 오후 5시 응급실에 이송됐고 오후 6시30분 휠체어에 실려 의료원에서 300m 떨어진 공원 벤치로 옮겨졌다. 편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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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인천의료원이 평소에도 일부 무연고 환자를 진료 없이 돌려보낸 정황도 파악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의료원에서 작성한 무연고자 진료의뢰서 960여 건 중 실제 진료기록이 없는 경우가 383건이었다. 숨진 채씨의 진료기록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인천의료원 컴퓨터 모니터에서 ‘진료비 미수납자 접수 불가’라는 메모도 발견했다. 해당 의료원 소속 의사는 경찰조사에서 “의료원에서 일부 무연고자나 주취자를 병원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뤄졌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천의료원이 관리리스트를 만들어 환자를 가려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의료원 관계자는 “상습적으로 찾아오는 주취자 대여섯명을 암묵적으로 접수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조직적으로 리스트를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주취자들을 응급실에 재우면 ‘내가 왜 병원에서 자야 하냐’며 난동을 부린다”며 “피해를 보는 건 응급실에 찾아온 다른 환자들”이라고 말했다.



재정난에 환자 가려 받기 했나



한편 의료원의 ‘환자 가려 받기’는 재정난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의료원에 따르면 환자들로부터 받지 못하는 진료비 미수금이 연간 약 5000만원이다. 반면 인천시에서 받는 지원금은 약 4000만원이라고 한다. 의료원 측은 “지원금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일용 경기도 의료원장은 " 노숙인 등은 복지 관련 부서가 담당하고 공공의료원은 보건 관련 부서가 맡고 있다" 며 "주무부서를 행정적으로 통합해 예산지원을 하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덕순 의료정책연구소장은 “공공의료기관이라도 응급실에서 주취자를 모두 받아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경찰과 연계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등을 활용해 주취자가 술을 깰 때까지 관리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의료원은 지난 17일 “유가족과 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사과문에서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주취자 응급체계에 대해 유관기관과 함께 예방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인천=편광현·심석용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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