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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정부 첫 최저임금 실태조사···폐업·영세사업장은 쏙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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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차원 첫 최저임금 영향 실태 조사

사람 내보내고, 조업 단축으로 연명

중앙일보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저임금 영향 분석 토론회'에서 노용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최저임금 현장 실태파악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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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들어 급격하게 인상된 최저임금이 취약계층을 허물고 있다. 음식·숙박업이나 도·소매업 같은 곳의 타격이 컸다. 정부가 처음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시장의 영향을 파악한 결과다.

최저임금 파고 견딘 사업장만 대상으로 해 영향 파악에 한계
다만 이번 조사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견디지 못해 폐업한 곳이나 규모가 작은 사업장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돼 한계가 있다. 최저임금의 파고를 그나마 견뎌낸 업체만 대상으로 했다. 또 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최저임금에 따른 실직 사태는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21일 이런 내용이 담긴 최저임금 현장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고용부가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에 의뢰해 20여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집단 심층 면접(FGI) 방식으로 조사했다. 최저임금의 영향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시행한 첫 조사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사람도 내보내고, 근로시간도 줄여
노용진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 교수는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의 경우 대부분의 사례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감소가 발견됐다"며 "고용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근로시간을 줄이는 사업체도 상당수 존재했다"고 밝혔다. 사람을 내보내는 것으로도 견디기 힘들어 남아있는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줄이는 형식으로 인건비를 낮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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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부담에 점주가 직접 운영하는 편의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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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휴수당 부담에 초단시간 근로 늘어…근로자 임금 감소
손님이 적은 시간대에는 영업하지 않거나 아예 사업주 본인이나 가족노동으로 전환해 꾸려가는 경우도 상당수 포착됐다. 노 교수는 "단시간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단축해 초단시간 근로를 확대하는 사례도 발견됐다"고 말했다. 초단시간 근로는 일하는 시간이 주당 15시간 미만이다. 주휴수당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인건비를 줄이려는 노력이지만 근로자 입장에선 임금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한다. 통계청의 고용동향 조사에서 나타난 임시직 근로자와 초단시간 근로자가 늘어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들 업종에는 저임금 근로자가 많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은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허물고, 임금마저 낮추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학계의 지적이 현실로 확인된 셈이다.

인력난 중소기업, 사람 내보내는 대신 근로시간 단축
노 교수는 "공단 내 중소제조업의 경우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았던 근로자들도 꽤 많이 존재해 최저임금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용을 줄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인력난 때문에 숙련 근로자를 내보내는 대신 일하는 시간을 줄여 인건비 감축을 꾀한 셈이다. 다만 자동차 부품 제조업의 경우 일부 기업에 고용감소가 있었지만 고용이 늘어난 경우도 있어 최저임금의 부정적 효과가 발견되지 않았다.

노 교수는 "실태조사 결과 대부분의 경우 원청기업과 프랜차이즈 본사가 최저임금의 인상부담을 공유하지 않고 있었다"며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인해 원자재 비용이 증가하는 기업이 많아 영세기업이 최저임금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임금 받는 근로자로 조사 대상 한정…직격탄 맞은 영세 사업체도 반영 미흡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가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경제학 교수는 "연구 결과가 나름대로 객관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일부 업종의 고용조정을 정부 차원에서 확인하고 인정한 점은 성과"라며 "다만 분석대상에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이 부족한 건 아쉽다"고 말했다.

노 교수의 조사에서도 나타났듯 중소 사업체가 최저임금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를 감안하면 영세 사업장은 더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에선 그 수가 부족해 취약 업종과 열악한 사업체, 저임금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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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들의 폐업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내 한 건물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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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한 곳 조사 대상에서 제외해 현실 파악 어려워
가파르게 오르는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아예 폐업한 사업장도 많다. 이번 연구에선 이에 대한 심층 면접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근로자도 임금을 받는 사람으로 조사 대상을 한정했다. 최저임금 때문에 실직해 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의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다.

임금분포 조사 결과도 발표…"정부 자료와 동어 반복. 하나 마나"
이날 토론회에선 최저임금 인상 이후 임금분포 변화에 대한 조사 결과(김준영·조민수·박비곤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분석팀)도 발표됐다. 그러나 이 조사는 그동안 고용부가 정기적으로 내는 고용동향 분석과 큰 차이가 없다. 모 대학 경영학 교수는 "(정부가 낸 자료의)동어 반복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또 다른 대학의 경제학 교수는 "임금분포 분석은 하나 마나다"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도 살아남은 사업체라면 임금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고, 하후상박의 임금인상은 불 보듯 자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분포의 분석이 객관적이려면 살아남은 자(임금을 받는 근로자)뿐 아니라 죽은 자(실직자)도 고려한 분석을 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번에 발표된 임금분포 조사에서 '고임금 분위로 갈수록 임금증가율은 축소된다'는 결과를 냈다. 하후상박이란 얘기다. 임금을 받는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이러니 "임금 불평등도는 큰 폭으로 개선됐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하후상박으로 임금 격차 줄면 인사 관리에 애로"
노 교수의 실태조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다만 노 교수는 한국고용정보원과는 다른 시각으로 해석했다. "고경력자와 저경력자, 고숙련자와 저숙련자의 임금격차가 지나치게 축소되면 향후 인사관리에 애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능력이나 성과에 따른 임금 체계가 허물어지면 근로자 입장에선 승진 또는 성과 달성을 위한 동기가 사라진다. 기업 입장에선 인사관리 체계가 흔들리는 셈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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