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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 1696년 2번째 일본행은 '조선의 밀사'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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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토학회 학술대회서 최영성 교수 주장

연합뉴스

독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안용복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연간에 일본을 두 번 갔다. 1693년 울릉도에서 고기잡이하다 일본에 끌려갔고, 1696년에는 자발적으로 바다 건너 일본을 방문했다.

안용복의 두 번째 도일(渡日) 목적은 학계에서 여전히 논의가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알리려 했다는 설이 우세하나, 일본 학자들은 대부분 이 같은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한국영토학회가 24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개최하는 학술대회에서 일본 자료 '원록각서'(元祿覺書)를 분석해 안용복이 조선의 밀사로 1696년 일본에 갔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21일 배포된 발제문에 따르면 최 교수는 "안용복은 개인 자격으로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서 "겉으로는 울릉도 어업권으로 포장됐지만, 내면적으로는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도일을 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가 주목한 원록각서는 안용복이 1696년 일본에 갔을 때 시마네현 북쪽 오키(隱岐)섬 관계자가 안용복 신상과 문답 내용을 정리한 문서로, 2005년 오키섬 무라카미(村上) 가문에서 발견됐다.

그는 "원록각서를 보면 안용복 일행이 오키섬 관리들과 문답에서 대답하지 않거나 대답을 하더라도 내용이 모호한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전에 도일 경험으로 곤욕을 겪은 안용복은 외교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배후에 있는 상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원록각서에는 안용복이 허리에 찬 패에 관한 기록도 있다. 패 앞면에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안용복 갑오생(甲午生)'이라고 적었고, 뒷면에는 '동래'(東萊)라 하고 인(印)을 새겨 넣었다.

최 교수는 "원록각서에는 동래부사와 함께 조선 국왕이 거론됐다"며 "이는 안용복 일행이 조선 국왕에서 동래부사로 이어지는 지휘 계통에 있었고, 이 계통이 자신들의 배후임을 시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흥국사 주지이며 금오승장인 뇌헌과 대솔승 등 수군이 안용복과 동행한 점도 조정에서 도일에 개입했음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안용복 배후에는 소론 정권의 남구만, 윤지완이 있었다"며 "이들의 지시를 받고 도일한 조선의 밀사가 바로 안용복"이라고 밝혔다.

학술대회에서는 이외에도 돗토리번 고문서, 장생죽도기(長生竹島記) 등을 분석한 다양한 독도 관련 논문이 발표된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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