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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억만장자의 기부와 ‘반골 지식인’ 촘스키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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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Institute Professor & Professor of Linguistics emeritus)이자 언어학자이며 사상가인 노엄 촘스키 /사진 출처: MIT

지난 20일 미국의 사모펀드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 회장 로버트 F. 스미스의 '대학 학자금 대출 상환' 깜짝 기부와 관련된 기사가 나가자 온라인상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관련 기사] [글로벌 돋보기] "학자금 대출 다 갚아줄테니..." 어느 억만장자의 당부
(링크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204463)

'멋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독지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돈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기부 자체만로도 대단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당부가 더 인상적이다' 등 호평 일색이었다.

기자도 그랬다. 올해 초 자신과 같은 마이너리티인 흑인 남성들만 다니는 모어하우스 칼리지에 미화 150만 달러(우리 돈 약 18억 원) 기부를 한 후, 이어진 졸업식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올해의 축사자(Commencement Speaker)-미국에서는 대학 졸업식에 누가 축사자로 올지가 해마다 아주 큰 관심사이다-로서 40여 분 가까운 졸업 축사(Commencement speech)를 하는 영상을 보고 기사를 쓰면서 '돈을 벌어서 저렇게 쓸 수 있다니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라는 감탄을 넘어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빚 걱정하지 말고 세상에 나가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꿈과 열정을 펼치고, 그렇게 해서 사회에 봉사하라'는 스미스 회장의 가르침은 진정 여러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고 '귀한 본보기'로서 회자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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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미국 모어하우스 칼리지에서 졸업 축사를 하는 로버트 F. 스미스. 출처: 모어하우스 대학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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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스미스 회장은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통 큰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비교적 덤덤하게, 유머까지 섞어 가며 '놀라운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발표하는 스미스 회장을 보면서 갖게 된 생각이었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관심은 그의 자산 규모로 옮겨 갔고, 그가 비록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흑인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보다도, 스타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보다도 더 부자(2015년 포브스지 선정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운데 최고 부자)라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포브스(Forbes)지의 발표로는 스미스 회장의 자산은 50억 달러, 우리 돈 약 6조 원에 달한다. 그 가운데 이번에 4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478억 원가량을 기부한 것이다. 물론 이번 기부는 그동안 계속 이어져온 그의 기부 선행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스미스 회장은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등이 참여한 '기부 서약 The Giving Pledge,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서약'에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서명했다.)

6조 원 중에서 478억 원, 100분의 1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스미스 회장은 이제 막 꿈을 펼치기 위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대학생 396명에게 '꿈을 좇을 자유'를 선물한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펼쳐 후대에 기여하라는 그의 좌우명을 반영한 진심 어린 당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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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회장의 ‘대출금 상환 약속’에 환호하는 모어하우스 칼리지 2019 졸업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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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갚아야 할 빚을 한순간에 탕감받고 '꿈을 좇을 자유'를 선물 받게 된 학생들은 기분이 어떨까? 또 그들의 인생은 빚이 있었을 때와 비교해 과연 어떻게, 얼마나 다르게 펼쳐질까? 스미스 회장의 이 같은 결단으로 인생이 바뀌고, 그래서 바뀐 학생의 인생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스미스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가능성'이라는 실로 엄청난 선물을 한 것이고, 그로부터 세상에 또 어떤 기여를 할 주인공이 나와 '선행의 선순환'이 일어나게 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문득 외신 기사의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학자금 대출과 이자까지를 갚으려면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할 것인지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지요."

모어하우스대 총장 데이비드 A. 토머스의 말이었다. 그렇다. 이 대학의 올해 졸업생들은 '운 좋게' 빚을 탕감받았지만 다른 대학의 학생들, 모어하우스 대학의 이전 졸업생과 이후 졸업생들에게는 학자금 대출이 여전히 '족쇄'로 남아 있을 것이다. AFP도 최근 미국에서 치솟는 교육비와 학자금 대출이 점점 더 사회문제화되고 있다고 지적했고, 신용평가사 피치는 학자금 대출 규모가 1조 5천억 달러(약 1천788조 원)를 넘었다고 추산했다.

누군가는 재산의 100분의 1 정도를 흔쾌히 기부하고, 누군가는 대학 때 빌린 학자금 때문에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할 것인지' 출발선에서부터 선택에 제한을 받아야 하는 상황.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곤혹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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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동시에 ‘학자금 대출(Student loan)’이라는 족쇄를 차게 되는 현실을 풍자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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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문에 대해 세계적인 석학이자 이른바 '반골 지식인' 노엄 촘스키 미국 MIT 교수가 몇 해 전 언급한 바가 있어서 간략히 소개한다.

"언젠가 <뉴욕타임스>에 이런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위스콘신 주에서 실직한 노동자들이 공립학교 선생님들의 수입 수준이 높아서 분개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러면서 모두가 희생을 함께 감당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었을까요? 이렇게 된 데는 2000년대 금융 위기 당시 모두가 어려웠을 때 골드만삭스 투자은행 회장이었던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블랭크페인 회장의 능력에 대한 업계의 평판은 절대 나쁘지 않다)같은 사람들이 한 해 보너스로 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받고 자신의 기본급을 세 배나 올리면서도 어느 누구와도 그 돈을 나누지 않아도 되었던 현실들이 누적돼 있습니다.(당시 살아남은 거대 투자은행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위기를 모면했으며 금융 정책에 있어서도 정경 유착의 덕을 봤다는 비판을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상징적이고 극단적인 예를 들긴 했지만, 전 세계 인구의 1% 최상층부에는 이처럼 지난 세대 동안 어마어마하게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있지요. 우연히도 아니고 시장에 의해서도 아닙니다. 국가의 세금과 기업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반 대중은 정작 이런 (사회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소방관이나 도서관 사서들의 수입이나 연금 같은 (겉으로 보여지는 자잘한) 부분에만 관심을 두곤 합니다. 저처럼 사회 현상의 '본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소수 있지만 대중은 거기까지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죠."

실제 1960~70년대 30~40:1 정도였던 CEO대 노동자의 평균 보수는 2000년대 300~400:1 정도로 급격하게 차이가 벌어졌는데, 촘스키 교수는 이처럼 소득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원인으로 정부의 정책을 지적하는 목소리와 궤를 같이하면서 단순한 현상 이면의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바라볼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촘스키 교수는 이번 스미스 회장의 선행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선행 자체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또 어떤 비평의 말을 던질지... 자못 궁금해진다.

양영은 기자 ( yeya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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