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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짙은 어둠 파헤친 ‘기생충’, 칸이 열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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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

상영회 마친 뒤 관객들 열렬 기립박수

계급사회의 섬뜩함과 빈자의 절박함

블랙코미디·호러·스릴러로 버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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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밤이 늦었으니 집으로 돌아갑시다. 렛츠 고 홈. 땡큐!”

그야말로 ’봉준호의 밤’이었다. 22일(현지시각) 자정이 넘은 시각,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기생충>의 월드 프리미어 상영이 끝난 뤼미에르 극장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5분 넘게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박수 소리는 더욱 오랫동안 계속됐을 것이다. <기생충>에 대한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은 영화 상영 도중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영화 관계자들은 극중 두번이나 기립 박수에 견줄 법한 박수 갈채를 보냈고(어떤 장면인지는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 밝히지 않겠다), 이러한 호응은 <기생충> 이전 상영된 경쟁 부문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의 칸영화제 초청 소식을 들은 뒤 “한국 관객들이 봐야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는 디테일이 있기 때문에” 수상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21일에서 22일로 넘어가는 새벽, <기생충>에 쏟아진 프랑스 현지의 찬사는 이 영화가 한국을 넘어 해외 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음을 확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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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반지하층에 위치한 낡고 허름한 집에 사는 기택(송강호)과 충숙(장혜진) 가족을 비추며 시작된다. 아빠, 엄마와 딸, 아들. 네 가족 모두가 백수인 이들은 상자를 접어 피자집에 납품하고 남의 집 와이파이에 몰래 접속해 문자를 보내는 등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좋은 제안이 들어온다.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나가는 그의 친구가 자신이 맡았던 부잣집 영어 과외를 소개시켜준 것이다. 문서를 위조하는 데 재능이 있는 동생 기정(박소담)의 도움을 받아 명문대 학생으로 둔갑한 기우는 젊은 안주인 연교(조여정)의 신뢰를 얻어 글로벌 아이티(IT) 기업의 시이오(CEO) 박 사장(이선균)의 집에서 과외를 시작한다. 박 사장 부부의 첫째 딸 다혜(정지소)의 공부를 돌봐주며 집안 사정을 알게 된 기우는 자신의 동생 기정을 박 사장 부부의 막내 아들 다송(정현준)의 미술 과외 선생으로 섭외하려 한다.

여기까지가 봉준호 감독이 공개를 허한 <기생충>의 내용이다. 그는 영화 상영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두 남매의 과외 알바 진입 이후의 스토리 전개에 대해서 최대한 감춰주신다면 저희 제작진에게 큰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영화를 보고서야 봉준호 감독이 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면서도 스포일러 유출에 만전을 기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블랙 코미디에서 스릴러, 호러, 드라마까지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변화무쌍하게 장르의 얼굴을 바꾸는 <기생충>은 덜 알고 볼 수록 더 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이 작품에서 장르를 추동하게 하는 건 모두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사회 계급의 차이다. 영화는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빈곤한 자들과 그들이 선을 넘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부자들의 동선이 우연히 겹치게 되었을 때 벌어지는 희비극을 조명한다.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는 필연적으로 한쪽이 다른 쪽에게 기생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가진 자들의 환경에 마치 연체동물처럼 자신을 맞추려 하는 빈자들의 절박한 노력은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서늘하고 통렬하게 다가온다.

‘계단’은 <기생충>에서 부자와 빈자의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요소다. ‘봉테일’이라는 별명답게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주요 장소마다 계단을 배치해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영화의 중반부 이후 계단은 그간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섬뜩한 호러의 무대로 변신해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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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사회적 계급의 격차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격차로 인해 인간이 상실하게 되는 자존감의 문제 또한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자존감조차 누릴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 사회는 과연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신분 상승의 계단 위쪽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발 밑에 웅크린 존재들을 외면하는 시대, <기생충>은 사회의 가장 어둡고 깊숙한 지점까지 내려가보는 영화다. <살인의 추억>과 <마더>, 그리고 <괴물>이 그랬듯, 봉준호의 가장 좋은 영화는 언제나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부터 탄생되는 듯하다. 이제는 그 목록에 <기생충>을 추가해야할 때다.

칸/장영엽 <씨네21> 기자 evans@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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