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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수사 트리오 이인규·홍만표·우병우…檢 주역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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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시계는 국정원 작품" 이인규 해외 도피중

'몰래 변론' 대명사 홍만표 만기 출소

'승승장구' 팔짱 낀 우병우는 재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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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10년 전인 2009년 5월23일 토요일 새벽.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말로 시작하는 14줄 171자의 유서를 남긴 채 고향인 김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장된 이 글은 노 전 대통령이 집을 나서기 직전인 이날 새벽 5시21분 작성한 것이었다. 김해 시내 한 병원을 거쳐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된 노 전 대통령은 오전 9시30분께 서거했다. ‘박연차 게이트’ 사건과 관련, 2009년 4월30일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 중수부에 출석해 소환조사를 받은 지 23일 만이었다.

당시 이인규(61·사법연수원 14기)부장이 이끌던 대검 중수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회사 사업을 도와달라’는 취지의 포괄적 청탁과 함께 총 640만달러(약 72억7800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논두렁 시계’는 원세훈 국정원 작품 …이인규 전 중수부장 ‘해외 도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 집회로 위기에 몰렸다. 취임 5개월 만인 2008년 7월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그룹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대대적인 특별 세무 조사를 실시한다.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기획 표적 수사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를 구속한 검찰은 2009년 1월에 대검 중수부 수사팀을 개편했다.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던 이 부장과 홍만표 수사기획관, 중수1과장이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강성 칼잡이가 주축이었다.

그 해 4월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소환됐고 같은달 30일 노 전 대통령이 소환되기에 이르렀다. 조사는 자정을 넘겨 이튿날인 2009년 5월1일 오전 2시까지 이어졌다. 조사가 끝난 직후 김해로 출발한 노 전 대통령 일행은 그날 오전 5시55분 봉하마을에 복귀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신병처리를 고심하던 사이 20여일이 흘렀고,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 부근 부엉이바위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 정두언 전 의원은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광우병 촛불시위로 몸살을 앓고 난 직후, 검찰·경찰·국세청 등 전 정권에서 임명된 권력기관장들의 교체설이 나돌았는데 그 중 한 명이 자기가 살기 위해 꾀를 냈다”고 떠올렸다. 이어 “사업가 박 회장을 세무조사하면 노 전 대통령을 잡을 수 있고 반 정부세력의 기를 제압할 수도 있다고 보고했는데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이에 솔깃했다”고 말했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보다 법원에 맡기기로 한 MB가 이 부장에게 구속하지 말 것을 지시했고, 이 부장이 수사 주임검사이던 우 전 수석에게 MB의 뜻을 전달했지만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게 정 전 의원의 설명이다.

우전 수석은 노 전 대통령 조사 직전 “당신은 더 이상 대통령도, 사법고시 선배도 아닌, 그저 뇌물수수 혐의자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다”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우 전 수석은 사법연수원 19기, 노 전 대통령은 7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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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의혹을 알고도 묵인하고 직권을 남용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거 이후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은 물러났고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맡은 이들 트리오의 행보도 엇갈렸다.

이 전 부장은 같은 해 사표를 내고 한 법무법인에서 일하다 2017년 8월쯤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검찰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수사 가이드라인’을 받았다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발표가 나온 시점과 맞물려 ‘사실상 해외로 도피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자신의 출국 사실이 논란을 빚자 이 전 부장은 언론에 입장문을 보내 “일하던 로펌을 그만 둔 후 미국으로 출국해 여러 곳을 여행 중”이라며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잘못한 점이 있어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소재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전 부장은 이 글에서 “국정원 측이 찾아와 원세훈 국정원장의 뜻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며 ‘국정원 소행’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승승장구 우병우 ‘국정농단’ 방조…몰래 변론 대명사 홍만표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검사장 승진에서 연이어 탈락한 우 전 수석은 2013년 검찰을 떠났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만인 2014년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공직에 복귀한 뒤 이듬해 민정수석으로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출세 가도는 오래 가지 못했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당시 최씨의 국정개입을 묵인하고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등을 사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우 전 수석이 후배 검사들 앞에서 팔짱을 끼고 웃고 있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됐지만 구속기간이 만료로 올해 초 석방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재판장 차문호)에서 항소심을 심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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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관 로비 의혹에 연루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1년 대검 기획조정부장(검사장)을 끝으로 검찰을 나온 홍만표 전 기획관은 변호사 개업 후 큰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검사장 시절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등록한 재산은 13억원(2010년 말 기준) 수준이었지만 변호사 개업을 한 이후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100억원 가까운 소득을 신고했다.이때 국내 개인 사업자 소득 랭킹 15위, 법조계 소득 1위를 찍었다.

홍 전 기획관은 변호사로 활동하던 2016년 6월 이른바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됐다.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실형이 확정된 그는 지난해 만기출소했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회)는 지난달 홍 전 기획관이 ‘전관 입김’을 넣어 구명청탁을 해준다며 맡은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찰권이 부당하게 행사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홍만표 몰래변론’ 사건으로, 홍 전 기획관이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상습도박 혐의 사건을 선임계 제출 없이 수임하면서 수사 관계자들과 연고가 있어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적극 과시해 거액의 착수금과 성공보수금 약정을 체결했다는 의혹이다.

위원회는 “영향력 행사를 통한 사건무마 시도가 검찰권 행사 왜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면서도 “검찰이 정 전 대표를 상습도박 혐의로만 기소하고 처벌이 더 무거운 업무상 횡령에 대해 아무런 결정과 처분을 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과오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