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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헌법불합치 낙태죄, "이제부터 더 큰 논쟁의 장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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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지난달 11일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 입법 과정에서 ‘디테일의 악마’를 두고 사회 각계가 치열하게 다툴 것으로 보인다. 낙태 찬성 여부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주요 잣대 중 하나이자 젠더 이슈까지 엮여 있는 고차함수다. 이 때문에 “낙태죄 논란은 헌재 결정으로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란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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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입장발표를 마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로 포옹을 하고 있다. [뉴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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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낙태죄, 삭제하나
형법 개정 논의에서 처음으로 부딪히는 난제는 형법에서 낙태죄를 명시한 부분을 삭제해야 하는지 여부다. 형법 269조는 낙태한 임부(妊婦)를 처벌하는 자기 낙태죄를, 270조는 낙태를 시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동의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다. 헌재의 결정문 중 ‘결론’ 부분을 보면 ‘자기 낙태죄 조항과 의사 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 결정문만 보면 형법에서 자기ㆍ동의낙태죄를 삭제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 조항을 삭제하면 임신 기간과 관계없이 모든 낙태가 합법이 된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출산 예정일 한 주 전에 낙태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출산이 임박해 낙태할 경우엔 합법이고, 조기 출산한 뒤 유기해 태아가 사망했을 경우에는 영아 살해죄로 처벌하는 모순적인 상황도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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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생명사랑국민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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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도 이를 고려해 결정문 중 ‘이유’에서 임신 기간에 따른 낙태의 적절성 여부를 언급했다. 하지만 헌재의 ‘이유’는 참고할 뿐이지 개정법은 ‘결론’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회입법조사처 김주경 입법조사관은 “법조계에선 헌재의 ‘결정’에 따라 형법에서 낙태죄 자체를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라고 설명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도 “낙태죄를 삭제할지는 상당히 큰 논란이 될 것”이라면서도 “헌재의 결정 ‘이유’를 고려해 임신 기간에 따라 낙태죄 처벌을 달리하도록 개정을 할 경우 새 법은 다시 위헌 논란이 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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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 결정과 성·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입법 관제 전문가 초청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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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낙태 허용 시기는
송 의원은 “형법에서 낙태죄를 삭제하고 모자보건법이나 특별법에 임신 기간별 낙태 허용 여부를 규정하는 식으로 논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 의원의 주장대로 국회 논의가 진행될 경우에도 ‘어느 정도의 임신 기간까지 낙태를 허용하느냐’ 하는 난제에 부딪힌다.

헌재의 결정 이유에서 언급된 임신 기간은 ‘14주’와 ‘22주’다. 이석태ㆍ이은애ㆍ김기영 재판관은 ‘결정 이유’에서 “임신 14주 무렵까진 어떠한 사유 요구 없이 임신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유남석ㆍ서기석ㆍ이선애ㆍ이영진 재판관은 “태아는 임신 22주 내외부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고 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헌재의 의견을 반영해 임신 14주까지는 임부의 요청만으로, 14~22주까지는 태아의 건강 상태나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ㆍ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일괄적으로 기간을 정하는 데 대한 비판도 있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낙태죄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동식 연구위원은 “개인이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임신 14주를) 넘길 수밖에 없는 여성들은 지금과 같은 음성적 시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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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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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청소년의 낙태는 어떻게
청소년의 낙태는 어떤 방식으로 허용할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모자보건법에는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만 부모의 동의를 받아 낙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논의 과정에서 청소년의 경우 부모의 동의를 받게 할지, 스스로 결정하게 할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낙태를 허용한다면, 낙태를 거부할 수도 있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특히 의료계가 예민하게 반응한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낙태가 허용될 경우, 종교적 이유로 낙태 시술을 거부하는 의사는 현행 의료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이 때문에 ‘낙태에 대한 양심적 거부권’을 의료법에 넣을지도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 28개국 중 21개국은 거부권을 도입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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