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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추경 혈투, 외나무 다리서 부총리·야당으로 만난 '행시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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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2차관 출신 송언석 의원, 나경원 대표 참모 역할
‘국가채무비율 GDP 40%’ 쟁점화때 공격 최선봉에 설 듯

지난 1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을 방문한 기재부 간부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지난 4월 국회에 제출된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심사 협조를 부탁하기 위해 나경원 원내대표를 만나기로 했는데, 그 곳에 송언석 의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재부 2차관 출신인 송 의원은 지난해 6월 재보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다. 지난해 연말 예산 심의 때는 예산 편성을 책임졌던 경험을 살려 정부측 원안 삭감을 주도했다.

송 의원은 초선이지만, 기재부 2차관 경력을 인정받아 나 원내대표의 경제 참모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 동기인 송 의원과 나 원내대표는 평소에도 각별한 관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송 의원은 홍남기 부총리와는 행정고시 29회 동기다.

조선일보

지난 1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사진 가운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면담 중 송언석 의원(왼쪽 첫번째)과 논쟁을 하고 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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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시 동기인 홍 부총리와 송 의원은 이날 나 원내대표를 가운데에 두고 공개 설전(舌戰)을 했다. "미국과 중국은 둘 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좋은데, 우리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 때문에 성장률이 마이너스"라고 한 나 원내대표에게 홍 부총리가 "한국 경제만 어려운 게 아니고 글로벌 경제가 다 어려운 상황이어서 그 여파가 미치는 것"이라고 반박하자, 송 의원이 나 원내대표를 대신해 재반박에 나선 것이다.

송 의원은 "최근의 불황 원인을 대외변수로 내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경기가 나빠질 것에 대비해 추경 편성을 하겠다는 것은 결국 경제정책 실패를 자백한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자 홍 부총리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경제는 어렵고, 특히 중국의 최근 경제성장은 대대적 감세로 뒷받침된 것이다. 잘못된 인식"이라고 맞받았다. 이에 나 원내대표가 "그렇다면 우리도 감세하면 될 것 아니냐"고 따지면서 이날 설전은 마감했다.

이날의 설전이 세종시 기획재정부에 전해지자 예산실 등 재정당국 간부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예산 편성 등 재정정책 전반을 관장한 경험이 많고, 기재부 사정에 정통한 송 의원이 나 원내대표의 참모 역할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당장 추경 통과에 난관이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강원도 산불, 포항 지진은 재해 예비비로 우선 지출하라’는 나 원내대표의 주장이나, 재해 추경과 미세먼지 대책을 포함한 경기 추경을 분리 심사하자는 자유한국당의 입장이 송 의원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는 시각이 기재부에서는 지배적이다.

송 의원의 당내 역할은 더 커질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내년 이후 재정지출을 지금 보다 더 확장적으로 운용할 것을 주문한 이후 ‘국가채무비율 40%’가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송 의원은 지난 23일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총액의 비율을 40%이하로 유지하고,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도 2% 아래로 관리하도록 하는 ‘재전건전화 법안’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이 통과될지는 불투명하지만, 국가채무비율 40%가 정치 쟁점화되면 송 의원이 최선봉에 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반면 같은 날 홍 부총리는 세종정부청사 기재부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경제 상황과 세수 상황이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내년에 채무 비율이 40%를 넘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 "경제 활력 제고를 뒷받침하고 구조 개혁을 지원하며 미래 사회에 선제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확장 재정을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경 뿐만 내년 예산 총지출 증가율을 놓고도 행시 29회 동기인 홍 부총리와 송 의원이 맞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송 의원과 홍 부총리는 행시 동기이지만 공직생활 경로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재무부에서 사무관 생활을 시작한 송 의원은 재정경제원 시절 예산실로 옮겨 건설교통과장, 경제예산심의관, 예산총괄심의관, 예산실장 등 예산실 요직을 두루 거쳐 예산관료들이 선망하는 기재부 2차관으로 공직 생활을 마쳤다.

반면 경제기획원 출신 홍 부총리는 예산총괄계장(서기관)을 했지만, 과장 승진 후에는 예산실을 떠나 있었다. 기재부 정책조정국장, 청와대 국정기획비서관 역임 후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거쳐 경제관료의 최고봉격인 경제부총리에 올랐다. 이 때문에 기재부 안팎에서는 같은 듯 다른 공직경로를 걸어온 행시 29회 동기들이 추경 등 예산 심의 외나무 다리에서 혈투를 벌이게 됐다는 관전평이 나오고 있다.

[세종=정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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