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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과학TALK] 며느리도 모르는 신약 개발 비법?…"수십만 화합물 합성이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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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약을 만드는 일은 수십만개 이상의 화합물을 합성하고 치료 효과를 찾는 확률 게임이다. 종가(宗家)에서 장 담그는 비법을 집안 며느리에게도 함부로 전수하지 않는 것처럼 제약사들은 화합물의 집합을 잠재적 신약의 보물창고로 여긴다.

화합물은 2개 이상의 다른 원소가 일정한 비율로 구성된 것이다. 어떻게 합성하냐에 따라 새로운 구조의 화학식이 탄생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화합물은 해외에서 사 오지만 화합물끼리 합성도 가능하기 때문에 신규 화합물의 양은 제약회사의 연구 역량으로 인정받는다.

조선비즈

영하 6도의 저온으로 유지되는 한국화합물은행에 보관 중인 화합물. /조선DB



화합물들의 집합은 다양한 종류의 책이 여러 권 소장된 도서관과 같다. 그래서 화합물 집합을 ‘라이브러리’라고 부른다. 여러 화학구조식이 백과사전처럼 집대성된 디지털 데이터베이스인 셈이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지적재산으로 여기므로 사업부간 흡수합병 시 필수적으로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공유한다. 한 회사의 연구소에서 활용도를 찾지 못했던 화합물이 다른 회사의 화합물과 만나 예기치 못했던 신약으로 탄생할 수도 있다.

신약을 만들 때는 화합물 라이브러리에 존재하는 구조대로 화합물을 만들어 실험을 시작한다. 필요할 때마다 손가락 하나 정도 길이의 유리병에 화합물을 담아 저온 환경에 보관하고 꺼내서 쓰는 개념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화학연구원은 이런 화합물을 영하 6도의 저온 환경에서 보관하는 한국화합물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화합물 보관량은 약 61만종에 달하며 국내에서 신약개발을 원하는 연구자에게 화합물을 무료로 제공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약 1개를 개발하려면 연구원이 직접 수만개의 새로운 화합물을 시험해야 했다. 사람이 일일히 확인하기 때문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최근에는 신약 개발 효율을 높이고자 화합물 라이브러리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한 방법이 대세다.

AI는 각 화합물이 사용된 치료제 기록과 특성을 기억하고 있다가 어떤 질환에 맞는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할때 적합한 화합물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각 화합물은 바코드처럼 고유번호를 갖는다.

AI를 활용한 신약 예측 시스템을 사용하면 화합물을 직접 합성하지 않고도 각 화합물의 질병 치료 효과를 알 수 있다. 하나의 신약이 나오기까지 평균 10년, 수조원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화합물 검색·예측은 연구개발 비용과 시간 단축을 위해 필수적이다.

국내에서는 SK바이오팜과 JW중외제약 등이 AI 신약 개발 플랫폼과 라이브러리 검색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뇌전증 신약물질 ‘세노바메이트’를 발굴한 SK바이오팜의 경우, 중추신경계통과 관련된 저분자 화합물을 40만개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2만5000여개는 SK바이오팜이 직접 합성한 결과물이다.

한국화학연구원도 국내·외 화합물 정보를 통합한 웹검색 기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국내 연구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국내 연구자들은 화합물 정보를 통해 새로운 약물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는 다시 한국화학연구원의 데이터베이스에 모여 빅데이터를 이룬다.

이선경 한국화학연구원 한국화합물은행 센터장은 "국내 화합물 관련 데이터가 증가하고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가치 있는 화합물을 확보할 수 있다"며 "라이브러리, 한국화합물은행 등 빅데이터가 국산 신약 연구의 토대"라고 말했다.

김태환 기자(tope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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