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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MB와 김백준'의 법정 대면, 검찰은 왜 소극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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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김백준씨, 소환장이 송달됐지만 출석하지 않으셨습니다." (24일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재판장)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심에서 뇌물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는데 핵심 진술을 했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그는 이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이 시작된 이후 줄곧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계속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21일 자신의 재판에는 휠체어 타고 출석해놓고 사흘 뒤 열린 이 전 대통령 재판에는 또, 일곱번째 불출석했다.

이날 재판부는 그에게 법정 최고액인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했다. 그리고 오는 29일 증인신문 기일에 또 나오지 않으면 감치(監置)하겠다고 했다. 형사소송법상 법원은 과태료를 부과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는 증인을 최대 7일까지 감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김 전 기획관은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법정에 나와서 이 전 대통령과 마주해야할 처지가 됐다. 그가 이렇게까지 이 전 대통령과의 대면을 피하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불리한 진술을 한 데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소환장에도, 구인영장에도 묵묵부답인 김백준
김 전 기획관은 지난 1월부터 법원이 보낸 증인출석 요구서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폐문부재·閉門不在)로 법정에 연이어 불출석했다. 그러자 지난 3월 재판부는 서울고법 홈페이지에 증인 출석 소환장을 올려 공개적으로 출석을 요구했다.

이 방법도 통하지 않자 재판부는 지난달 24일 김 전 기획관에 대해 구인영장을 발부했다. 당시 재판부는 "김 전 기획관은 법정 증인으로 소환된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정당한 이유 없이 나오지 않는다"며 "검찰은 영장을 집행에 김 전 기획관을 데려오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지난 8일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경찰로부터) 구인장을 집행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소환장도 송달되지 않고 구인장도 집행되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증인신문 기일을 잡는 게 의미 없다. (검찰은) 소재가 파악되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변호인들이 직접 찾겠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모두들 재판 과정에서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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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자신의 항소심 재판에 출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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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김백준 진술 번복할까 우려하는 듯"
지난 21일 김 전 기획관은 자신의 재판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그러나 사흘 뒤 이 전 대통령 재판에는 다시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실상 그가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강경한 조치에 들어갔다.

재판부는 이날 김 전 기획관이 증인 출석에 불응한 데 대해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하고 다음 재판(29일)에 불출석하면 구금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조치에 검찰은 "김 전 기획관 출석과 무관하게 항소심 재판 절차는 종결돼야 한다"고 했다. 당초 다음 기일인 오는 29일은 결심공판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김 전 기획관이 본인 재판에는 출석하고 소환장까지 전달받았으므로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고 재판 절차를 마무리할 수 없다"면서 "구인영장이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법 집행기관(검찰)이 엄정하게 구인영장을 집행해달라"고 했다. 김 전 기획관의 증언을 직접 들어봐야겠다는 취지였다.

이 같은 상황을 놓고 법조계에서는 "김 전 기획관 본인은 물론, 검찰도 그의 증인 출석이 달갑지 않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는 "검찰이 구인장 집행과 증인 소환에 적극적이지 않는 것 같다"며 "혹시나 증언을 뒤집을까봐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형로펌 한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 김 전 기획관 증언은 이 전 대통령의 유무죄를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검찰 입장에서는 공소사실 자체가 흔들릴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검찰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성의를 안 보인다"며 "재판부가 강경하게 기일을 지정하고 과태료를 부과해 검찰 측이 (심리적으로) 압박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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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 /연합뉴스·김소남 전 의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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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金의 검찰 진술...직접 듣겠다는 재판부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항소심 재판이 시작되면서부터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1심 때는 치매 등 건강이 이상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었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검찰에서) 너무 말도 안 되는 진술을 해놔서 건강이 안 좋은 줄 알았는데, 헬스클럽도 다니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항소심) 증인 출석을 거부하고 있어 더 의심스럽다"고 했다.

실제 이번 재판 과정에서는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 내용과 사실관계가 엇갈리는 부분이 여러 번 나왔다. 우선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다스 소송비 61억여원을 지원받은 의혹과 관련해 "2008년 4~6월쯤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청와대로 찾아와 이 전 대통령을 접견했고, 전반적인 삼성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 잘 모시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으나, 이 전 부회장은 지난 3월 재판에서 "그런 적 없다"고 증언했다. 이 전 대통령이 뇌물을 받기로 사전에 약속했는지 여부가 갈리는 대목이다. 1심에선 이 혐의를 포함해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또 김 전 기획관은 검찰에서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지난달 5일 재판에 나와 "(사위) 이상주 변호사와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있는데 왜 김 전 기획관에게 돈을 갖다주겠느냐"며 김 전 기획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검찰에서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공천 헌금 2억원을 받아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을 통해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의 자수서를 썼지만, 이 사무국장은 지난 3월 재판에 나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다보니 이 전 대통령 측은 김 전 기획관을 법정에 불러 직접 증언을 들어봐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가 계속 불출석하자 재판부 역시 그의 증언을 듣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는 "통상 재판부는 과태료도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신중하게 부과한다"면서 "피고인도 아니고 증인 소환에 감치까지 하는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대형로펌 한 변호사도 "최고액을 과태료로 부과한 것을 보니 재판부가 김 전 기획관의 신빙성을 의심해 증인 출석을 강제한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홍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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