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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요즘 중국선… 식당마다 日 아베 총리가 "어서 오십시오!" 외치고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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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아베총리 굴욕 입간판 유행

조선일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진을 활용한 입간판(왼쪽 사진)이 최근 중국에서 유행 중이다. 사진 원본은 2014년 아베 총리가 마코 루비오 미국 연방 상원의원을 접견할 당시 찍힌 것인데, 포즈나 표정 때문에 '굴욕 외교'란 조롱을 받기도 했다. / AFP·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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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어서 오십시오!(爺你請進)"

요즘 중국 쓰촨성, 산시성 등의 대도시 식당이나 가게에서 자주 쓴다는 입(立)간판엔 이런 문구와 함께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사진이 들어가 있다. 사진 속 아베 총리는 허리를 굽히고 앞을 쳐다보면서 공손한 자세로 마치 누군가에게 안내를 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포즈와 표정이 손님을 맞는 문구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 입간판은 물론 합성이다. 원본 사진은 지난 2014년 일본에 방문했던 마르코 루비오 미국 연방상원의원을 접견한 아베 총리를 찍은 것이다. 당시 공화당의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하나였던 루비오 의원을 맞은 아베 총리가 공손하게 자리를 권하는 모습이 외신에 찍혀서 화제가 됐다. 당시에도 펑황넷 등 중국 인터넷 언론들은 ‘아베의 굴신(屈身·몸을 굽힌다는 뜻)’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진을 보도하면서 아베 총리가 미국에 굴욕 외교를 펼친다고 비판했었다. 이 사진을 활용해 만든 입간판이 언제부터 처음 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최근 2~3개월 사이 입간판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중국 전역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중이다.

5년 전 사진이 갑자기 중국 전역에서 입간판으로 둔갑한 이유는 최근 1~2년 간 ‘신(新)냉전’이라고 부를 정도로 얼어붙은 동북아시아 정세와 관련이 있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고액의 관세와 제품 및 기술 공급 금지 등 전방위로 무역 압박을 하고 있고, 일본 역시 미·일 동맹을 축으로 그 압박에 가담하는 모양새다. 중국 내 반미·반일 감정이 치솟으면서 양국 정상에 대한 조롱이나 비하를 담은 물건들까지 시중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입간판 외에도 중국의 각종 인터넷 쇼핑몰에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변기솔을 팔고 있다.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잘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 부분을 변기솔로 변형시킨 디자인이다. AFP 통신 등 외신들은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된 직후인 5월 10일부터 중국에서 트럼프 변기솔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자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나라의 정상을 풍자하는 일은 세계 어디서나 흔하지만, 아예 물건까지 만들어 팔거나 영업 도구로 쓰는 일은 중국 외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공산당 일당 독재인 중국의 정치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 하오란(浩然)씨는 “저렇게 아베 총리를 우스꽝스럽게 만든 입간판을 가게 앞에 세워두는 것 자체가 공산당에 ‘내가 이렇게 국가의 적을 미워하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중국에선 역사적으로 반일 감정이 강했던 데다가 요즘 미·중 무역 전쟁에서 일본이 노골적으로 미국을 편드는 모습까지 겹치면서 그 반작용으로 아베 입간판이 일종의 놀이처럼 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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