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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HIV와 에이즈에 대한 오해와 진실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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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됐다가 체내에서 바이러스를 몰아낸 두 번째 환자가 나왔다.”

영국 런던의 케임브리지대학을 포함한 공동연구진이 지난 3월5일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 HIV 환자 치료 사례를 발표했다. 2003년 HIV에 감염됐던 환자의 신상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고, 런던에 거주해 ‘런던 환자’로만 알려졌다. 런던 환자는 2012년 암의 일종인 호지킨림프종에 걸려 2016년 줄기세포 이식술을 받았다. 연구진은 HIV 감염에 저항성이 있는 유전자를 가진 기증자를 찾아 런던 환자에게 이식했다.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환자는 면역 시스템이 바뀌었고 이식술을 받은 지 16개월 뒤부터는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투약하지 않아도 몸에서 HIV가 나오지 않았다. 약 복용을 중단하고 18개월이 지나도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자 의료진은 런던 환자를 ‘두 번째 치료’ 사례로 보고했다.

‘베를린 환자’ 티머시 레이 브라운(53)이 첫 HIV 완치 환자로 보고된 지 11년 만이다. 브라운은 미국인이지만 독일 베를린에서 치료받아 베를린 환자로 명명됐다. 그는 1995년 HIV에 감염된 뒤 백혈병에 걸렸고, 치료를 위해 2007년 줄기세포 이식술을 받았다. 런던 환자와 마찬가지로 HIV 감염에 저항성 있는 줄기세포를 이식받는 데 성공해 HIV로부터 자유로워졌다. 2008년 HIV 치료에 성공한 브라운은 런던 환자처럼 개인정보를 드러내지 않다가 2010년 자신의 치료 사실을 대중에게 알렸다. “나는 단 한 명의 HIV 치료자가 되고 싶지 않다. 많은 환자가 병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이야기와 사진을 언론에 공개하겠다.” 브라운은 2012년 7월 미국 워싱턴에 자기 이름을 딴 HIV/AIDS(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치료 재단을 만들었다. 브라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그는 미국 전역과 브라질 등 남미, 전세계를 다니며 HIV에 대한 편견에 맞서기 위해 강의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줄기세포 이식술 자체가 위험하고 성공률이 낮기 때문에 모든 HIV 감염 환자에게 시술하기는 어렵지만, 베를린 환자에 이어 런던 환자가 HIV 치료에 성공하면서 한때 ‘죽음=HIV’였던 공식이 깨지고 있다. <한겨레21>이 HIV와 에이즈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재구성해봤다.

불치의 병 HIV/에이즈에 걸리면 급격한 신체 변화를 겪어 짧은 시간 안에 목숨을 잃는다?



베를린 환자인 브라운과 런던 환자는 드물게 완치에 이른 사례다. 그러나 이들처럼 치료에 성공하지 않더라도 HIV/에이즈 환자는 안정적으로 질병을 관리하며 삶을 이어갈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처음 미국에서 에이즈 환자를 파악해 보고한 1981년에 HIV/에이즈는 죽음과 동일시되는 무서운 질병이었지만, 이후 빠른 속도로 의료 기술이 발전했다. HIV/에이즈 연구가 쏟아지면서 현재는 충분히 관리되는 영역으로 들어왔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2015년 펴낸 자료집에서 “치료와 관리를 받으면 보통 수명을 누릴 수 있고, 치료받지 않을 경우 11년의 기대수명을 누릴 수 있는 질병”으로 HIV/에이즈를 정의했다. 국제기구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 전세계에 HIV 감염 환자 4천만 명이 있고 이 중 2100만여 명이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는 것으로 보고된다.

이 사실을 근거로 의학계에선 HIV/에이즈를 당뇨 같은 만성질환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적절한 관리와 치료를 받으면 일반인과 다름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당뇨와 달리 HIV/에이즈는 타인에게 전염될 우려가 있어 일반 만성질환보다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HIV는 전염성 높은 질병으로 환자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



HIV와 에이즈를 동일시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잘못된 주장이다. HIV는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지만, HIV에 감염됐다고 모두 에이즈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로 알려진 억제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체내 바이러스 검출량을 ‘0’에 가깝게 줄일 수 있다.

혈액을 매개로 전염되는 HIV는 식사나 신체 접촉 등으로 감염되지 않고 주로 ‘성관계’나 ‘주사기 공유’ 등으로 감염된다고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잘 관리하면 성관계로도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와 선진국의 보건기구들은 “HIV 감염인이 치료받으면 6개월 안에 바이러스 수치가 미검출 수준으로 떨어지고, 미검출 수준을 유지하는 HIV 감염인과 성접촉으로 HIV에 감염될 확률은 없다”고 설명한다. 지난 5월 런던대학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연구팀이 의학전문 학술지 <랜싯>에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HIV 감염자를 대상으로 항레트로바이러스 억제치료를 하고 이들의 파트너 남성 1천 명을 8년 동안 관찰한 결과 HIV에 감염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보고했다.

HIV 감염은 주로 동성애자들 사이에 이뤄진다?



감염 건수로만 비교하면 동성애자보다 이성애자를 통해 감염된 경우가 더 많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2017 HIV/AIDS 신고 현황’ 자료를 보면 전체 감염자 1009명 중 752명이 성접촉을 통해 감염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394명(52%)이 이성과, 358명(48%)이 동성과 성접촉으로 감염됐다. 질병관리본부가 한국에서 HIV 감염자를 파악한 1985년 이후, 이성 간 접촉으로 감염된 사례보다 동성 간 접촉으로 감염된 사례가 많았던 해는 없다.

일부 동성애를 혐오하는 집단의 “성소수자를 통해 HIV 감염이 확산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한국 사회에서 HIV 감염자 수는 가파르게 늘다 최근 정체기에 들었다. 2017년 신규 신고는 1191건으로, 2016년 1199건보다 8건 줄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HIV/에이즈에 대한 ‘오해’와 환자들에게 덧씌우는 ‘낙인’이다. HIV 환자에 대한 낙인은 환자들이 빠른 검사로 감염 사실을 확인하고 치료에 나서는 것을 꺼리게 한다. 검진과 치료의 지연은 환자 당사자의 삶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질병을 악화하고 전염성을 키울 수 있다. HIV/에이즈 환자에 대한 낙인을 줄이지 않고는 추가 감염을 억제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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