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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 성락원…문화재청은 유령인물(?) 근거로 명승 지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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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3일 한시 개방되었던 서울 성북구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전통정원 성락원.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라고 알려졌지만, 현재까지 심상응이라는 인물은 찾아내지 못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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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으나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기록된 ‘명승 제35호 성락원’에 대한 설명이다.

전통 정원인 성락원은 지난 1992년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라는 등의 이유로 “학술적·역사적 의미가 높다”면서 사적 제358호로 지정됐다가 2008년 문화재에 ‘명승’ 개념이 도입되면서 “예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명승 제35호로 문화재 항목이 바뀌었다. 그런 성락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지난 4월23일이다. 당시 서울시가 개인소유의 성락원을 한시 개방하면서 “서울에 남은 유일한 한국 전통 정원이고,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이 별장으로 사용했으며,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이 35년간 거주하며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된 별궁”이라고 홍보한 덕분이었다. 특히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성락원을 한국의 3대 정원으로 꼽았다는 것이 알려져 더욱 화제를 모았다. 특히 성락원은 개방 당시 ‘200년 만에 열린 비밀정원’으로 포장되어 일반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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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14일 성락원을 사적으로 지정했을 때의 문화재위원회 제3분과위원회 회의록. 성락원이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으로 일제 초기에 의친왕 이강 공의 별궁으로 사용된 곳이라는 이유로 사적이 됐다. 하지만 ‘철종 시대 이조판서 심상응’ 내용은 관련 사료를 찾을 수 없다.|김영주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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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성락원을 설명하는 역사적인 사실 중 ‘조선 철종 대 이조판서 심상응’은 실존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실은 문화재청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받은 자료를 검토한 결과, ‘철종(재위 1849∼1863)대 이조판서 심상응’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확인됐다고 12일 밝혔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정사와 각종 야사, 그리고 개인문집의 정보를 모두 담은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와 한국고전번역원의 ‘고전종합DB’에서 ‘심상응’ 인물검색을 해보면 <승정원일기>에 딱 한 건 등장한다. 즉 “1898년(고종 35년) 2월 22일 경기관찰부 주사에 심상응을 임용했다”는 기사이다. 김영주 의원은 “문의 결과 국사편찬위원회는 시간적인 격차나 지위고하를 고려하면 검색된 심상응은 ‘조선 철종 시기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과 동일인물로 보기 어렵다고 확인해주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사적 근거가 없는 인물이 성락원의 주인으로 등장하고, 사적-명승으로까지 지정되었을까.

김영주 의원실은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1992년 8월14일 문화재위원회 회의록과 1994년 5월 발간된 사적 지정 자료에서 별다른 근거 없이 성락원이 이조판서 심상응 별장으로 기재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적에서 명승으로 재지정된 근거가 된 2006년 12월 연구보고서도 아무런 검토없이 “성락원은 조선 순조 때 황지사의 별장으로 조성된 것이나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으로 꾸몄고…”라고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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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만든 문화재(사적) 지정자료. 역시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 운운의 내용이 그대로였다.|김영주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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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관련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정대영 주무관은 “1992년 사적 지정 당시 어떤 근거로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라 표현했는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정 주무관은 “혹여 지정 당시의 이름이 심상응이 아니라 그 비슷한 이름의 착오일 가능성(이를테면 심상운, 심상웅 등)을 두고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1992년 사적지정 당시의 오류를 명승으로 재지정할 때 바로 잡을 수도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 주무관은 “2008년 명승으로 재지정할 때 주변 경관과 예술적인 가치를 주로 평가했지, 누구누구의 별장이냐는 것은 중요한 검토항목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즉 성락원의 경우 조선후기부터 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자연의 풍류를 즐기고, 사색하는 등 정자와 별장을 겸한 공간으로서의 ‘살아있는 정원’이란 가치를 높이 평가했지, 누구의 별장이냐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주무관은 “사적과 명승을 가르는 조건은 흔적일 경우는 사적, 살아있는 경관일 경우는 명승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정 당시부터 역사적인 팩트가 틀렸다면 완전성과 진정성의 측면에서 문화유산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영주 의원은 “그런데도 성락원 종합정비계획에 국민 혈세 56억원이 투입됐다”면서 “어떤 근거자료로 성락원이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으로 둔갑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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