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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논두렁 시계'와 '마룻바닥 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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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디넷코리아=정진호 기자)'논두렁 시계'는 참여정부 도덕성을 유린한 검찰의 잘못된 수사 방식의 대표적 사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염치를 모르는 파렴치한'이라는 프레임 안에 그를 가눠놓고 칼춤을 췄다. 모든 이에게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피의사실 공표에 신중해야 할 검찰이 오히려 사건의 본질과 전혀 관계없는 사안을 흘리고, 언론이 이를 받아쓰면서 망신을 주고 면박을 줬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계, 논두렁에 버렸다'는 모 방송 보도가 나간 지 열흘 만에 서거했다. 법정에서 진실을 다툴 것이라 믿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고의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칼날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검찰은 지난 11일 정현호 사업지원TF 팀장(사장)을 소환해 분식회계 증거인멸과 관련해 삼성 경영진의 조직적인 모의와 증거은폐 행위가 있었는지 17시간가량 조사했다. 검찰은 삼성 경영진이 분식회계를 통해 삼성물산과 합병에 앞서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고, 결국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보고 있다. 수사 방향이 불법적인 경영승계와 맞닿아 있다는 거다. 검찰의 칼날이 이재용 부회장을 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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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 전경.(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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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같은 혐의가 사실과 진실이라면 이 부회장을 비롯해 고의 분식회계를 모의했거나 지시한 임직원들은 법의 심판을 달게 받아야 마땅하다. 법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아직 검찰의 공소사실은 '~라면'이라는 추론 하에 있다. 법정에서 충분히 다툼의 여지가 있다. 검찰은 증거인멸 혐의로 삼성그룹 8명의 임직원을 구속했는데, 이들 피의자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증거인멸이 곧 분식회계라는 도식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이 증거인멸 혐의로 내세우는 공장 바닥을 뜯어보니 서버와 노트북이 나왔다는 일명 '공장 마룻바닥 서버'도 삼성 수뇌부가 관여한 조직적인 증거 인멸 행위라고 보기엔 뭔가 어설프고 유치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잘잘못을 가려야 할 분식회계 의혹보다 증거인멸이 더 크게 다뤄지면서 삼성은 법정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파렴치한이 되어 버렸다.

검찰이 수사 중인 본안 사건은 고의 분식회계 의혹이 핵심이다. 삼바가 왜 2015년 12월 삼성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꿨는지, 또 이것이 적법한 경영행위인지, 고의성이 있는 불법한 것인지 여부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삼바 측은 기업의 재량권을 폭 넓게 인정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K-IFRS) 기준으로 적법하게 변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바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금융당국의 판단도 세 번이나 바뀐 바 있다. '고의'라고 판명한 증권선물위원회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행정소송도 1, 2심 모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효력 정지 결정을 내렸다.

2년 전 국정농단 사태 당시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 뇌물공여 사건 수사에서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호언장담했다. 그 때 프레임은 삼성은 국민연금에 손을 댄 나쁜 기업이었다. 하지만 1, 2심을 통틀어 70여 차례의 공판이 열리고 특검이 제출한 증거만 3천400여개, 기록은 수만 페이지에 달했지만 정작 명확한 물증은 없었다. 대신 '묵시적 청탁'이라는 비과학적이고 희한한 논리가 검찰 측 법리를 대신했다. 2심 재판부는 삼성그룹에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이 없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네면서 부정한 청탁을 할 일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대법원 최종심을 기다리고 있다.

검찰의 공소 사실은 법정에서 입증되어야 한다. 합리적 이성과 과학적 사고에 따른 사실과 증거로서 말이다. 보편과 상식이 담겨 있다면 더 좋겠다. 그러나 극단적이고 자의적인 논리는 위험하다. 몰아가기 식 수사는 제2, 제3의 피해자를 낳을 뿐이다. 기업을 불합리하게 단죄하려고만 하면 안된다.

삼성은 어제 삼바 분식 회계 보도와 관련 두 번째 입장문을 발표했다. 삼성 측은 “(5월 5일)회의는 증거 인멸이나 회계 이슈를 논의한 회의가 아니었다. 삼바와 에피스 두 회사의 판매현황과 의약품 개발과 같은 중장기 사업 추진 내용 등을 보고하는 자리였다”며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유죄의 심증을 굳히게 하는 무리한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읍소했다. 진실 규명을 위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도 했다.

삼성도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모든 의혹에 대해 성실히 밝히고 좀 더 투명한 경영 조직과 기업으로 태어나야 함은 물론이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증거인멸 기업으로 낙인 찍혀서야 되겠는가. 잘못이 있다면 마땅히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

정진호 기자(jhjung70@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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