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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공장 한복판 녹지 풀어달라"에도 "방법 없다"...속타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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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하기 힘든 나라]

과학적 근거도 없이 철강·화력발전 미세먼지 주범몰이

勞까지 나서 "비전문가가 제기한 의혹 정치적 이용" 반발

산업 경쟁력 갉아먹는 정부·지자체 환경포퓰리즘 심각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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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업체 노사가 오랜만에 뜻을 같이했다. 환경단체의 압박에 지방자치단체가 고로 가동중단 명령을 내리자 회사뿐 아니라 민주노총 소속의 포스코 노조는 “고로 설비를 전혀 모르는 비전문가와 환경단체가 제기한 의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한국노총 소속의 포스코 노조(복수노조)도 “환경단체는 드론을 활용한 환경영향평가를 회사 측이 조작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펴고 있다”며 “지자체는 섣부른 행정처분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환경단체는 도를 넘은 월권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제철과 포스코에 대한 고로 가동중단 움직임은 한마디로 ‘환경 포퓰리즘’이다. 미세먼지가 이슈화되자 환경단체의 과격한 주장을 과학적 근거와 철강업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없이 받아들여 ‘고로 가동중단’이라는 극단의 처분을 내렸다. 현재 경북도와 전남도는 포스코 포항·광양제철소에서 고로를 정비할 때 안전밸브를 열어 오염물질을 불법 배출했다며 고로 10일 가동중지 사전처분을 내린 상태다. 그러나 철강 업계는 안전밸브 개방 시 오염물질이 배출된다는 지자체와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항변한다. 지난 2017년 환경부의 조사에 따르면 포스코 제철소가 위치한 포항과 광양 지역의 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각각 39㎍/㎥와 37㎍/㎥로 전국 96개 시군 평균인 45㎍/㎥보다 낮았다. 포스코 전체 사업장의 황산화물 배출량도 2016년 2만5,800톤에서 2017년 2만5,000톤, 지난해 2만4,200톤으로 해마다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2017년 3만6,100톤에서 지난해 3만9,200톤으로 증가했지만 2016년의 3만9,100톤과는 큰 차이가 없다.

철강협회가 올해 1월1일부터 4개월간 포항제철소 인근 지역의 대기환경을 조사한 결과 안전밸브를 열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미세먼지(PM10), 일산화탄소(CO), 황산화물(SO2), 질소산화물(NO2) 등 주요 항목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철강협회는 “안전밸브를 열었을 때 배출되는 것은 오염물질이 아니라 대부분 수증기이며 가스는 2,000㏄ 승용차가 하루 8시간 운행 시 10여일간 배출하는 정도의 소량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철강업 자체의 특성상 유해물질이 배출되는 것은 맞지만 미세먼지가 이슈화되자 제철소의 모든 공정이 미세먼지의 원흉인 것처럼 포퓰리즘적 조치를 쏟아내고 있다”며 “오죽하면 노동조합까지 나서서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불만은 철강 업계뿐 아니라 화력발전 업계에도 팽배해 있다. 석탄화력발전소라는 명칭 때문에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몰려 있고 정부 또한 화력발전을 겨냥한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화력발전이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한다는 근거는 희박하다는 것이다. 화력발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발전소마다 다르지만 최근에는 화력발전소에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친환경 설비를 설치한다”며 “정부가 친환경발전소라고 홍보하는 액화천연가스(LNG)발전과 비교해도 80% 수준의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화력발전소에서 직접 배출되는 미세먼지는 약 30%뿐이고 나머지 70%는 미세먼지가 아닌 기체가 공기 중 황산화물·질소산화물과 결합해 먼지로 바뀌는 것”이라며 “화력발전이 아닌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을 관리하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환경규제로 인한 피해는 중소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경북 영천에서 피복절연선과 케이블을 생산하는 대륙전선은 공장 한가운데가 도시계획상 ‘완충녹지’로 지정돼 있다. 완충녹지는 매연이나 소음·진동 등 공해의 발생원인이 되는 곳에 환경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정한 녹지지만 이 공장에서는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이 공장의 완충녹지는 공장 전체면적 2만2,714㎡ 중 43%에 달하는 9,917㎡. 10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증설하고 부대시설도 짓고 싶지만 현재는 쪼개진 채로 공장을 돌릴 수밖에 없는 기막힌 상황이다. 대륙전선은 1978년 해당 위치에 공장을 세운 후 뒤늦게 완충녹지의 존재를 알게 됐고 국토교통부와 영천시에 건의했지만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문제는 이 같은 정부·지자체의 ‘환경 포퓰리즘’이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철강업은 조선과 자동차·건설 등 한국 주요 산업의 원료를 공급하는 ‘산업의 쌀’이다. 철강업 경쟁력이 저해되면 대부분 산업의 경쟁력도 함께 무너지는 구조다. 화력발전도 마찬가지다. 값싼 발전원이 줄어들면 결국 전기료가 올라 산업 경쟁력이 주저앉는다. 대륙전선 같은 중소기업들도 탁상 환경행정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경제단체 고위관계자는 “미세먼지 등 환경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업들도 인식하고 포스코 1조700억원, 현대제철 5,300억원 등 대규모 투자도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산업을 모든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몰아세우고 규제로 손쉽게 해결하려는 포퓰리즘은 산업 경쟁력뿐 아니라 환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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