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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조카 장난감에 잔뜩 눈독…‘키덜트’가 쑥쑥 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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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경제의 창_주류로 떠오른 ‘어른이 문화’

장난감 수집욕 ‘유별난 일부’는 과거

캐릭터 인기·뉴트로 열풍 등 영향

소확행 추구하는 ‘평범한 누구나’로

‘직장인 절반에 성향 잠재’ 조사도

장난감·유통업계, 아동 인구 줄자

키덜트 대상 상품·행사 개발 집중

50만원짜리 20분 만에 매진되기도

시장규모 4년 만에 2배 성장 1조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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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이아무개(31)씨는 지난해 5월 서른번째 어린이날을 맞아 8만원짜리 ‘레고 프렌즈’를 자신에게 선물했다. 제품 포장에는 ‘5~12살 여아용’이라고 돼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해 연말엔 ‘해리포터 호그와트성’ 레고를 사는 데 60여만원을 썼다. 배송을 기다리는 동안 <해리포터> 영문판을 읽었고, 이틀밤을 꼬박 새워 레고를 완성했다. 직장인 최아무개(36)씨는 지난 5년간 피규어, 프라모델 등을 사는 데 3천만원 가까이 썼지만, 한정판 제품을 되팔아 20~30%가량 마진을 챙겼다.

이씨와 같은 ‘키덜트’(Kidult·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른)는 5~6년 전만 해도 변방에 있었다. 고가 장난감을 수집하는 일부 소비층, 특히 구매력 있는 30~40대 남성 위주였다. 충성도는 높지만 소비층이 엷은 탓에 ‘큰손’ 대접은 받지 못했고, 수집욕이 유별난 마니아와 매한가지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인식은 뒤집혔다. 최근 2~3년새 주류 문화로 떠올랐다. 유통업계에선 키덜트 대상 상품과 행사를 집중 선보이고, 5월 어린이날은 ‘어른이’를 붙잡기 위한 대목이 됐다. 자신을 ‘키덜트’라고 내세우는 것도 거리낌이 없어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은 키덜트 시장이 2014년 5천억원에서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한다.

어른이, 어디에나 있다

“조카 장난감이 갖고 싶다.” 지난 1월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610명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49%가 내놓은 답변이다. 레고(23.7%·복수응답), 한정판 상품(17.7%), 로봇(14.4%) 등 흔히 키덜트와 결부되는 제품이 이름을 올렸지만, 1위는 ‘캐릭터 상품’(30.9%)이었다.

유통업계에서는 카카오프렌즈 등 캐릭터 제품이 인기를 끌며 키덜트 범주가 넓어진 데 주목한다. 콘진원 집계로, 지난해 캐릭터 산업 규모는 12조7천억원에 이른다. 2011년 7조2천억원, 2015년 10조800억원에 견줘 성장세가 가파르다. 유통업계에서는 “라상무(라이언)가 최고 빅모델”이라는 말이 돌 정도다. 동서식품은 지난해 말 ‘맥심’ 세트를 구매하면 카카오프렌즈가 그려진 머그컵 등을 증정했는데, 한달 만에 68만개 모두 팔렸다.

20~30대 중심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비성향도 맞아떨어졌다. 이들은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을 우선하는 ‘가심비’를 추구한다. 최대 수십만~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레고, 프라모델, 피규어보다 저렴한 제품을 발굴한다. 지난 1~5월 다이소의 ‘프리티걸’ 시리즈는 매출이 전년 대비 20% 늘었다. 마론인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꾸미는 ‘리페인팅’ 용도인데, 5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20~30대 여성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복고를 재해석하는 ‘뉴트로’ 열풍도 키덜트 저변을 확대했다는 분석이다. 이랜드 스파오(SPAO)는 2017년말 일본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해리포터존’ 관련 버즈양(온라인에서 언급된 횟수)이 급증한 데 착안해, 지난해 해리포터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였다. 사전설문조사에서 7만명이 구매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출시 당일 2시간 만에 25만개나 팔렸다. 이랜드 관계자는 “뉴트로 열풍이 세대 불문 확산하면서, 잠재적 키덜트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했다.

5월5일은 ‘어른이날’

아동인구가 줄어들자, 장난감 업체는 키덜트로 눈을 돌렸다. 레고는 과거 인기 모델을 재출시하고 권장연령이 16살 이상인 제품을 대폭 확대했다. ‘레고 해리포터 호그와트의 성’(64만원), ‘레고 아이디어 볼트론’(27만9900원) 등이 대표적이다. 2017년 10년 만에 다시 선보인 ‘레고 크리에이터 엑스퍼트 타지마할’(16살, 49만9천원)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20분 만에 매진됐다. 레고코리아는 “구매력 있는 키덜트는 자신을 위해 수십만원도 기꺼이 쓰기 때문에, 지속해서 관련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게임 체험매장이나 캐릭터숍 등 키덜트 대상 공간을 대폭 넓히고 5월 판매전략을 ‘어른이날’ 중심으로 재정립했다. ‘토이저러스’ 국내 라이선스를 가진 롯데마트는 ‘키덜트존’을 지난 3년간 10개 매장으로 확대했고 하반기에는 피규어, 게임, 드론 등 성인 취미 전문 매장을 연다.

백화점은 키덜트 매장으로 젊은 소비자 발길을 붙잡는 효과를 노린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3월 건담 프라모델 전문 ‘건담베이스’ 매장을 서울 중구 본점에 들였다. 월평균 1억5000만원 매출을 내며 20·30대를 이끄는 데 주목했다. 현대백화점이 2017년부터 5개 점포에서 운영하는 ‘플레이스테이션 라운지’는 월평균 2만명이 찾는다. 이종 업체도 뛰어들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 1월 마블과 함께 내놓은 ‘코나 아이언맨 에디션’은 기존 코나 차량보다 500만~1천만원가량 비싼 2945만원에 판매됐지만, 지난 5월까지 모두 1500대가 팔렸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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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형에 정성 쏟으며 옛 기억 소환하죠”

돈 대신 시간 투자하는 키덜트들
인형과 여행까지 함께하며 만족감


출판편집자 정소영(37)씨는 ‘반려인형’ 셋과 동거한다. 함께 외출하고 때로 일터에도 데리고 간다. 국외여행을 위해 ‘곰인형 여권’도 장만했다. 귀한 경험일수록 곰인형과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신혼여행도 함께 갔다. 다섯살배기 아들은 자신의 보모 구실을 해온 곰인형을 ‘형’이라 부르고, 배우자는 곰인형 촬영이 수준급이다.

정씨는 ‘시간투자형’ 키덜트다. 거금을 들여 고가 장난감을 모으거나 재테크로 마진을 남기는 키덜트와 다르다. 오래된 봉제인형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 출·퇴근길에 동반하며 일상을 공유하고, 유아용 옷을 인형 체형에 맞게 고치며 휴일을 보낸다. 최근 반려인형 동행기를 담은 책 <곰돌이가 괜찮다고 그랬어>를 펴낸 정씨는 “출간 뒤 오프라인 모임과 각종 에스엔에스를 통해 ‘곰밍아웃’을 해오는 사람이 많다. 어린 시절 행복한 기억과 순수한 마음을 소환한다는 점에서 ‘키덜트’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반려인형 인증사진 등을 담은 ‘인형스타그램’이 34만개가 넘는다. 인형 계정을 운영하는 이보현(41)씨는 ‘덕업일치’를 좇는 사례다. 출판사 디자이너 경력을 살려 2015년부터 독립출판(‘곰곰출판’)을 운영하며 곰인형 관련 일러스트 등 10여권을 펴냈다. 그는 “곰인형과 사람이 소통하는 내용을 담은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생겨 직접 출판을 시작했다”며 “수입은 적지만, 작업 과정이 즐겁기 때문에 만족감은 크다”고 했다.

인형이나 캐릭터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반려인형족’을 겨냥한 시장이 일찌감치 형성됐다. 영국에는 매년 10월 둘째 수요일에 직장이나 학교에 곰인형을 데려가는 문화가 있다. 일본의 우나기 여행사는 반려인형이 바쁜 주인 대신 여행하는 ‘인형투어’를 진행한다.

국내에도 관련 시장이 있다. 서울 강남구의 인형수선가게 ‘토이테일즈’는 전국에서 월평균 40~50명이 찾는다. 이 ‘인형병원’에서는 4명의 수선 전문가가 봉제인형 솜·천 교체, 봉합수술, 체형교정·복제 등을 한다. ‘응급환자’에게는 빠른 수술 등 맞춤형 서비스도 제공한다. ‘보호자’ 10명 가운데 7명은 20대 중반~30대 중반이고, ‘환자’ 평균 나이도 20살가량 된다. 지난해에는 아이돌 인형 관련 문의가 집중됐다고 한다. 김갑연(59) 대표는 “인형 고유 느낌을 살리는 게 핵심이다. ‘과잉진료’를 자제하고, 꼭 ‘수술동의서’를 받는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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