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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가린다고 30년 된 왕벚나무에 드릴 구멍 10개 뚫은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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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간판가린다고 나무마다 구멍 뚫어

풍광 좋은 곳 가로수 농약으로 고사 시켜

“주변의 다른 왕벚나무는 잎이 다 푸릇푸릇한데 유독 3그루만 가지가 앙상한 게 이상했지요.”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한 사거리에 가면 가지만 앙상한 나무 3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나무마다 지름 1㎝ 크기의 구멍이 10~12개가 뚫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의 왕벚나무들은 수령이 20~30년 된 지름 30㎝, 높이 4~5m짜리 가로수용 나무다.

원주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지난 1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난달 28일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3그루만 고사 한 게 이상해 현장 조사를 했더니 나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며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의적으로 나무를 죽인 것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앞서 원주시는 지난 4일 현장조사를 마친 뒤 “나무를 고사시킨 범인을 잡아달라”며 원주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가 자수했다. A씨는 “나무가 식당 간판을 가려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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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음식점 업주가 느티나무에 뚫어놓은 지름 1㎝ 크기의 구멍. [사진 원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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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고사는 간판이나 조망권 때문



시름시름 앓다 고사하는 가로수가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대전시 동구 대청호 일대 가로수 3그루가 지난해 7월 고사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동구청에는 “대청호에 있는 느티나무 3그루가 말라 죽어간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동구청 직원이 현장에 나가보니 40년 된 느티나무 3그루의 잎이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나무를 훼손한 것으로 판단한 동구청은 나무 주변의 흙 등 시료를 채취해 한국분석기술연구소에 성분검사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 시료에서는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동구청은 농약을 뿌린 범인을 찾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또 나무 주변에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도 설치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기소중지 상태다. 고사한 느티나무는 높이 15m, 뿌리 지름이 50㎝에 달하는 대형나무다. 바로 앞에 대청호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며, 인근에는 상가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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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말라죽은 대청호 인근 느티나무 3그루. [연합뉴스]





작은 나무 심어 다시 키워야



동구청 관계자는 “느티나무가 전망대 주변에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토양 중화제와 수액 등을 공급해 살리려 했지만, 고사를 막지 못했다”며 “현재 어떤 나무를 심을지 주민 의견을 수렴 중인데 비슷한 크기의 나무를 옮겨 심는 건 불가능해 작은 나무를 심어 다시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로수가 고사하는 이유 중 상당수가 간판이나 조망권 확보 문제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원대 생태조경디자인학과 윤영조 교수는 “최근 가로수가 고사하는 사례가 많은데 상업지구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운전자들이 간판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나무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보행자 대부분은 나무로 인해 생기는 그늘과 쾌적한 경관 등을 선호하는 만큼 오히려 좋은 유인책이 될 수 있다”며 “내 가게 앞만은 안된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가로수를 임의로 고사시키거나 베어내다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원주=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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