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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사법농단 연루 판사, 사법농단 문건 비공개 판결…법조계 "불공정한 셀프 재판"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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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대법원 정의의 여신.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기민 기자] 참여연대가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사법농단 관련 문건들을 공개하라고 낸 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비공개가 타당하다고 13일 판결했다. 판결 직후부터 항소심 재판장이 사법농단에 연루됐던 판사였던 것과 관련해 법조계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공정하지 못한 재판"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서울고법 행정 3부(문용선 부장판사)는 이날 참여연대가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거부 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참여연대 패소로 판결했다.


지난해 사법행정권남용 의혹을 자체조사한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컴퓨터 등을 조사해 관련 문건 410개를 확보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가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90여개 문건과 전체 목록 등만 공개했고, 참여연대는 지난해 6월 404개 문건 원본을 전자파일 형태로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법원행정처가 비공개 결정을 고수하자 참여연대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공개를 청구한 파일들이 감사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행정처의 비공개 결정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문건들은 특별조사단의 감사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할 기초 자료로 사용됐다"며 "이를 그대로 공개할 경우 조사 대상자가 부담을 느껴 협조를 꺼리게 돼 향후 감사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1심을 뒤집었다. 이 재판부는 또 기소된 법관들의 형사재판의 증거라면서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공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형사소송법에서 제3자는 종국 판결이 확정된 후에 권리구제·학술연구 또는 공익적 목적으로만 검찰청에 소송기록의 열람·등사를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문건 중 90개는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에 내용이 상세히 인용돼 있어 국민의 알 권리는 충분히 충족됐다”고도 했다. 이어 “인용되지 않은 나머지 파일은 재판과 법관의 독립이나 법관의 기본권 침해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항”이라며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할 필요는 크지 않은 반면 공개되면 사생활이 과도하게 침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송 당사자인 참여연대는 항소심 판결 이후 “단 한 차례 변론 기일만 진행된 데다 새롭게 제출된 자료, 변론 근거가 없음에도 1심과 상반된 판결을 내린 2심 재판부의 판결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어 “대법원은 국민의 알 권리,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비위 통보 법관 명단,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 일체 등 관련 정보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또 검찰로부터 대법원이 비위통보를 받은 법관 66명의 비위 및 징계 정보 등을 공개하라는 내용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법조계에서도 이날 판결을 두고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가 판결했으니 결과가 뻔한 ‘셀프재판’”이라며 재판을 맡은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항소심 재판장인 문 부장판사는 2014년 서울북부지법원장 시절 서영교 의원의 재판 청탁을 들어주기 위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고 서 의원 요구 사항을 당시 주심 판사에게 전달한 것으로 검찰에서 조사됐다. 이 때문에 검찰이 사법농단 연루 의혹으로 올해 3월 대법원에 비위 통보를 한 법관 66명에도 문 부장판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초동의 A 변호사는 “통상 법관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자의 재판을 배당받으면 스스로 기피하고 있다”면서 “하물며 자신의 비위 의혹과 관련된 정보공개 청구 재판을 기피하지 않은 것은 재판 공정성에 대한 의심과 비판을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사법농단 사건을 겪고도 이런 것이 가능한 현재 재판 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가 지금 사법부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법농단 수사가 마무리된 지 6개월도 안 지났고, 양 전 대법원장 등 과거 사법부 수뇌부들의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이는 사법농단 사건으로 무너진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힘썼던 사법부 구성원들의 노력 및 공정한 재판을 요구했던 시민들과 법조인들을 지적을 무시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절차에 대한 비판 이외에 판결 내용에도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초동의 B 변호사는 "재판부는 드러난 사실을 가지고 적법성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조사 대상자의 협조 여부를 논하는 것은 ‘지나친 예단’"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사법농단 관련 문건은 형사재판의 증거이기 이전에 대법원이 3차례 진행한 자체조사의 결과물이며 검찰 기소 전 참여연대가 먼저 청구한 것이라서 선후 관계가 잘못됐다"는 지적과 "공개된 90개 문건 내용 이외의 나머지 문건에도 법관의 비위 내용이 포함돼있는 것이 이미 알려는데 세금으로 법관에게 월급을 지급해 온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도 모순"이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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