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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마우나리조트 사고 9시간 만에 사과한 이웅렬...인보사엔 두 달 넘게 침묵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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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그룹, 두 달 넘게 "입장 없다"

검찰, 이웅렬 전 회장 출국금지 조치

마우나 경험으로 침묵 일관 해석도

중앙일보

2014년 2월 경북 경주시 양남면 마우나 리조트 현장 지휘소에서 이웅렬 코오롱 전 회장이 임직원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공식 입장이 없다.”

지난 3월, 성분 논란으로 판매를 중단한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에 대한 코오롱그룹이 내놓은 입장은 단 한 문장이었다. 그 후 두 달, 관련 소송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코오롱그룹은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출국 금지조치가 내려진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의 침묵도 두 달째 여전하다. 이에 대한 코오롱그룹의 입장은 명확하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인보사와 관련된 사안은 코오롱생명과학이 담당하고 있다”며 “코오롱그룹 차원에선 어떤 입장도 없다”고 말했다.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5일 인보사 인허가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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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이 지난해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회장은 "내년부터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사진 코오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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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관계로 보면 코오롱그룹은 인보사 사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다. 코오롱그룹 지주사인 주식회사 코오롱은 코오롱생명과학의 대주주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올해 3월 공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최대 주주는 지분 20.35%를 보유한 코오롱이다. 코오롱 다음으로 이 회사의 지분을 많이 보유하는 주주는 이웅렬 전 회장이다. 전체 지분의 14.4%를 보유하고 있어 2대 주주에 올랐다. 지난해 경영 은퇴를 선언한 이 회장이지만 코오롱에 대한 지분 49.74%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코오롱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여전하다는 평가다. 전문 경영인에게 그룹 경영을 넘겼을 뿐 코오롱 그룹 소유권은 여전히 이 전 회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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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이 충북 충주시 코오롱생명과학 충주공장에서 열린 ‘인보사 성인식 토크쇼’에 참석했다. 이날 이웅렬 회장이 화이트보드에 쓴 ‘981103’은 이보사 사업보고서를 받아본 연월일을 의미한다. [사진 코오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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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코오롱그룹이 인보사 사태에서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재계에선 2014년 2월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에 주목한다. 코오롱그룹이 소유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로 대학생 등 10명이 사망했고 20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전 회장은 사고 발생 9시간 만인 다음 날 오전 6시 사고현장을 찾아 “나와 코오롱그룹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사고 발생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대주주와 그룹 차원에서 사과문을 발표한 것이었다. 낮게 엎드리는 '로우 키' 전략은 성공했다. 코오롱그룹에 대한 비난 여론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코오롱그룹은 피해 보상 금액을 놓고 피해자 측과 갈등하면서 2년 넘게 각종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대주주 사과-보상 협상-법적 분쟁이 사고 발생 이후 수년간 지속했다. 재계 관계자는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를 경험한 코오롱그룹이 사고 초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오롱그룹의 무대응 전략에는 도덕성을 중시하는 제약 업계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코오롱그룹과 대주주가 나서 인보사 사태를 인정할 경우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물론이고, 신약 개발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그룹 내 제약 부문이 존폐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약 업계 관계자는 “다른 기업과 달리 제약사에 있어 도덕성과 신뢰는 무엇에 비유할 수 없는 가장 큰 자산”이라며 “인보사 개발 과정에서 회사의 잘못을 인정할 경우에는 제약 사업을 접어야 할 정도로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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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발생한 마우나오션리조트 강당 건물 지붕이 붕괴돼 출동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이 사고로 10명이 숨졌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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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그룹과 이 전 회장의 무대응 행보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재계에선 그룹과 이 전 회장의 무대응 행보가 오랫동안 이어지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인보사 사태가 임직원 560여명에 불과한 코오롱생명과학 단독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거래소는 이르면 이달 19일 인보사를 개발한 코오롱티슈진의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상장폐지가 결정될 경우 수천억 원에 달하는 법적 분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국내 손해보험사 10곳은 코오롱생명과학을 상대로 인보사 의료비 환수 소송을 지난 5일 제기했다. 업계에선 보험금 환수액이 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보사 기술 수출 계약을 맺은 일본 제약사도 코오롱생명과학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정부는 인보사 개발에 투입된 100억원 넘는 국고보조금 환수 작업에 들어갔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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