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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라쿠텐 제국을 건설한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의 기업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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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회장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CEO열전-109] KT경제경영연구소는 최근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라쿠텐의 이동통신 산업 진출과 관련한 분석 보고서를 내놓았다. 제목은 '일본 제4이통사 라쿠텐의 네트워크 전략을 통해 본 성공 가능성'이다. 요지는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한 라쿠텐이 이전에 없었던 혁신을 통해 파격적인 수준으로 이동통신 요금을 끌어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상화된 무선 액세스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네이티브 네트워크'가 4세대 통신망으로도 5세대 네트워크 서비스를 가능하게 만드는데 이것이 라쿠텐의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소 어려운 내용이지만 라쿠텐의 혁신을 새삼 되돌아보게 만드는 보고서다.

일본 이동통신 시장은 NTT도코모 등 새로운 사업자가 넘보기 어려운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 영역이다.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라쿠텐이라도 해도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도전장을 던진 배경에는 기업가정신과 혁신으로 똘똘 뭉친 라쿠텐의 창업자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이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5세대 이동통신 상용서비스에 들어가 가입자가 이미 100만명을 넘었으나 일본 통신업체들은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라쿠텐는 오는 10월부터 4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하되 기존 업체보다 빨리 5세대 상용화에 나선다는 전략을 세웠다. 상대적으로 쉽게 새로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후발주자의 이점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미키타니 회장의 실험정신은 이동통신에 국한되지 않는다.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시장도 개척하고 있다. 지난해 인수한 '모두의 비트코인'을 '라쿠텐 지갑'으로 바꿔 지난 3월 암호화폐 거래소를 열었다. 스마트폰으로 자유롭게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전 직원이 '코딩'을 배워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도요타 직원들은 엔진과 서스펜션 등 자동차 기본 구조를 이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정보기술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코딩 같은 컴퓨터 기초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 10년 후 세상은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인간이 하는 서비스를 인공지능(AI)이 대체할 것인데 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라쿠텐은 이미 모든 직원이 초급 이상의 코딩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도한 혁신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은 2010년 시작한 '영어화(Englishnization)'다. 그는 2년 안에 회사 공용어를 일본어에서 영어로 바꾼다는 계획을 세우고 밀어붙였다. 당시 업계에서는 바보 같은 짓이라며 비웃었다. 다른 일도 많은데 직원들이 언어를 배우는데 시간을 쓰게 한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 한다고 기업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라쿠텐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영어에 능통한 인재들이 늘어나며 국내외 실적도 모두 좋아졌다. 미키타니 회장은 언론과 인터뷰하며 이때 교훈을 이렇게 자랑했다. "나는 은행을 그만두며 월급쟁이 규칙을 다시 썼다. 그리고 모든 라쿠텐 직원이 영어로 말하도록 할 때 또 규칙을 바꿨다. 이렇듯 오래된 규칙은 다시 쓰여 질 필요가 있다. 과거 유산에 매몰되지 않도록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지금의 당신을 연구해 보라."

그는 일본 재계에서는 보기 드문 혁신가다. 인터넷 개념이 생소했던 1997년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과 여행, 스포츠, 이동통신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장했다. 처음부터 사업에 뜻을 둔 것은 아니다. 창업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열망이 크지는 않았다. 그는 도쿄 히토쓰바시대학을 졸업하고 투자은행에 입사했다. 일본에서 은행은 신(神)의 직장이다. 명석하고 성실했던 그는 은행에서 잘 나가는 인재였다.

그의 삶의 여정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은 1995년 그의 고향인 고베에서 일어난 대지진이었다. 엄청난 참사를 겪으면서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수많은 이들이 허무하게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겼던 것이다. "인생에 기회가 많지 않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은행원은 나의 소명이 아니다." 결단이 서자 그는 즉시 은행에 사표를 냈다. 이는 라쿠텐이 탄생한 시발점이 됐다. 다른 벤처기업들처럼 그도 사업 초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혁신으로 난관을 돌파했고 창업 4년째인 2000년 라쿠텐을 상장했다. 확보한 자본은 신용카드를 시작으로 '라쿠텐 생태계'를 구축하는 실탄으로 쓰였다.

그가 해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해 기업가정신과 혁신을 보여주는 행사가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다. 올해도 그는 기조 연설자로 나서 라쿠텐의 미래 사업과 혁신을 알렸다. 작년에는 자체 가상통화를 발행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른바 '라쿠텐 코인'을 상품과 서비스 비용으로 쓰고 환전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었는데 이는 올해 암호화폐 거래소 사업으로 이어졌다. 그의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큰 도전은 이동통신 사업일 것이다. 일본에서 5세대 상용서비스가 실시되는 2020년 이동통신도 라쿠텐 생태계에 안착할 수 있을까. 그가 구상하는 혁신이 성공하면 가능한 일이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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