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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美격돌 전 우군 모으던 시진핑, 앞마당 홍콩서 발목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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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항 위해 바깥서 지원군 모으던 중국

‘홍콩 시위’ 내부 복병에 빛 바랜 외교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불과 1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홍콩 시위’란 뜻밖의 악재가 터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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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5일 타지키스탄에서 열린 아시아상호협력 및 신뢰구축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시 주석의 우군 확보 외교는 홍콩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로 빛이 크게 바래고 말았다. [중국 인민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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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 격화 속에 시 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오사카 격돌’을 앞두고 6월을 ‘우군 확보’의 달로 정한 뒤 외교에 치중해 왔다. 6월 초 가장 든든한 벗 러시아 방문에 이어 최근엔 중앙아시아 순방으로 중국의 후방을 탄탄하게 다졌다.

다음 주엔 아프리카 54개국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세 불리기’에 나설 계획이다. 한데 복병은 앞마당에 있었다. ‘범죄인 인도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시위대는 100만을 넘어 이젠 200만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의 고민은 두 가지다. ‘왜 하필 이 시점에 이런 사태가 터졌나’와 ‘뾰족한 대책이 보이질 않는다 ’이다. 무역전쟁에 전력투구하고 있던 중국은 홍콩 정부가 왜 지금 ‘범죄인 인도법’ 문제로 사달을 냈는지 영 탐탁하지 않은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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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샤오밍 주영 중국대사가 BBC와의 인터뷰에 출연해 "홍콩 정부가 중국 중앙정부의 지시로 '범죄인 인도법'을 추진한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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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중국의 속내는 지난 12일 류샤오밍(劉曉明) 주영 중국대사가 영국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드러났다. 류 대사는 “BBC는 홍콩 정부가 중국 중앙정부의 지시를 받고 ‘범죄인 인도법’ 추진에 나선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꿔 말하면 중국 당국은 홍콩 정부에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캐리 람 홍콩 정부가 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 다음은 홍콩에서 터진 일이 생각 밖으로 커지고 있다는 게 중국의 고민이다. 지난 9일 100만 홍콩인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만 해도 중국 당국은 사태가 이처럼 커질 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홍콩 현지 분위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홍콩 정부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다가 홍콩인의 분노를 키웠다.

결국 최루탄과 고무탄이 난무하는 등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한 12일 이후에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중국 공산당 서열 7위인 한정(韓正) 정치국 상무위원을 홍콩에 이웃한 선전(深圳)에 긴급히 내려보내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초기 대응이 늦다 보니 계속 시위대에 밀리는 모습이다. 시위대는 현재 크게 세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폐와,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시위대에 폭력을 가한 공권력의 사과, 그리고 사태를 야기한 캐리 람 행정장관의 하야다.

이에 대해 캐리 람 장관은 “법안 심의 무기 연기”와 “가장 겸손한 태도로 비평을 받겠다”고 밝혔으나 시위대는 ‘하야’를 계속 외치고 있다. 그가 실제 하야한다고 해도 한 번 불이 붙은 홍콩 시위 열기가 식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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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찰 모집 포스터가 붙은 담장 아래서 홍콩의 한 여성이 "캐리 람 행정장관은 더는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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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상황에 직면해 중국은 ‘홍콩의 시위’와 이를 지지하는 ‘미국의 태도’를 싸잡아 비난하는 방식으로 홍콩의 시위도 잠재우고 무역전쟁으로 대치하고 있는 미국도 공격한다는 돌 하나로 두 마리 새 잡기 전략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언론의 홍콩 시위 관련 보도는 대부분 미국 때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지난 15일 “홍콩이 중국 대륙에 압력을 가하는 미국의 새로운 도구가 됐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미국의 일부 국회의원들은 왜 홍콩에선 아직 유혈사태가 벌어지지 않나 하며 홍콩 사태가 나빠지기만을 기대할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홍콩인은 미국이 중국을 억제하는 데 사용하는 총알이 돼선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도 17일 ‘홍콩인이 미국의 간섭에 항의하는 행진을 벌였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고 “홍콩의 30여 개 단체 회원들이 미 정치인들의 홍콩 문제 개입에 반대해 거리로 나섰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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