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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왜냐면] 국민 신뢰에 기반한 북유럽의 수도정책 / 최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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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충식
물포럼코리아 사무총장


한국의 수돗물은 세계 물맛 대회에서 7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물의 맛뿐 아니라 품질, 안전성 면에서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 상수원 녹조, 노후된 관로, 부정적 언론 보도 등 다양한 이유로 직접 음용률은 10%가 채 되지 않으며 수돗물이 있어야 할 자리는 정수기와 먹는 샘물이 차지하고 있다. 수돗물의 직접 음용률이 90%가 넘는 북유럽은 우리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노르웨이의 오슬로 상하수도공사와 엔아르브이(NRV) 정수장은 인구 70만명 정도에게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수돗물 정수과정은 응집, 침전, 여과, 염소소독, 자외선 살균소독(UV) 등 우리와 비슷하고 수돗물의 순환시스템을 온라인으로 홍보하는 것도 한국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원수 관리가 철저해 과도한 정수 처리를 할 필요가 없고, 엔아르브이 정수장은 국가 보안급 시설로 간주해 정수장을 지하화해 외부의 재난·재해로부터 안정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핀란드의 헬싱키 지역환경사업소도 양질의 원수 공급을 위해 120㎞ 떨어진 호소에서 물을 끌어다 쓰고 정수 관리, 상수도 관리를 안전하게 하고 있다.

다만 두 나라 모두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노후된 관로와 30% 안팎에 달하는 누수율 문제다. 북유럽 국가들은 수돗물에 대한 관리를 지방정부가 공기업을 신설하여 독립적으로 추진하고 국비 지원 없이 100% 수도세로 충당하며 적극 대처하고 있다. 철저한 수돗물 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시사점은 바로 국가(지방정부)와 국민 간 신뢰다. 국가는 원수에서 수도꼭지까지의 검증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은 국가를 신뢰하며 90%가 넘는 국민들이 수돗물을 직접 음용하고 있다. 최근 대구의 수돗물에서 발생한 과불화화합물 검출 사건이나 인천 서구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에 대한 지방정부의 불안한 대처는 국민들의 수돗물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새로운 물 관리 시대를 접하고 있다. 물 관리 일원화에 따라 지방상수도와 광역상수도가 통합 관리되고, 물관리기본법 제정에 따라 원수에서 수도꼭지까지 통합적인 물 관리 체계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물 관리 정책의 변화는 국민들로부터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대국민 소통체계 부족과 정부 중심의 ‘톱다운’ 방식 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북유럽의 수도정책이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선진화된 물 관리·처리 기술이 아니다. 우리나라보다는 분명 깨끗한 원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의 신뢰 수준이다. 신뢰에 기반한 국가의 수도정책이 음용률을 90% 이상으로 높이고 있다.

통합 물 관리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명확하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각오로 수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며, 국민은 국가의 수도정책을 믿고 물을 마셔야 한다. 이것이 공공재인 수돗물을 지키고 먹는 샘물과 정수기로 발생되는 플라스틱 공해와 가계 부담을 줄이는 길이다. 국민의 신뢰에 기반한 북유럽의 수도정책, 선진화된 물 관리 기술을 보유한 한국이 배워야 할 가장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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