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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10년 1천회 연재 비결? 꼰대같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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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웹툰 `놓지마 정신줄` 작가 나승훈 씨(왼쪽)와 신태훈 씨.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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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놓지마 정신줄' 주인공인 정신, 정주리 남매와 그들의 부모는 정신줄을 자주 놓는다. 4박5일 해외여행 무료 이용권에 당첨된 1화부터 그렇다. 환상의 섬에서 '정신줄 놓고' 초호화 관광을 즐기던 가족은 '평일, 주말, 성수기, 비수기 제외'라는 약관을 뒤늦게 발견하고 24억8000만원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에 빠진다.

최근 서울 용산구 네이버웹툰 작가 공간에서 만난 신태훈 스토리 작가(44)는 이 에피소드가 지금까지 그린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시즌1의 1화 원고를 보내놓고 신혼여행을 갔어요. 여행지에서 그 에피소드를 읽었을 때를 절대 잊을 수가 없어요. 결혼만 해도 힘든데 연재까지 시작한 거니까요. 와이프랑 1화를 보면서 말했어요. 이제 어떡하지?"

2009년 출발한 걱정 가득했던 연재가 벌써 10년이 됐다. 지난 15일 네이버웹툰 연재 1000회 대기록을 달성했다. 스토리 담당 신 작가와 그림을 맡은 나승훈 작가(32) 두 명은 네이버웹툰에서 좀처럼 휴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 에피소드 독립된 소재를 취하는 '옴니버스 식 웹툰'으로는 이례적인 일관성이다.

콤비는 시사에서 이야깃거리를 가져오는 작업 방식으로 여타 작가보다 소재 부족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청년 구직난' '구독경제' '개인 정보 유출' '오존층 파괴' '애완동물 밀반입' 등 뉴스에서 자주 보던 소재가 각 에피소드에 스며들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 작가는 "세상이 밝아지면 우리가 해먹을 게 없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가끔 꽤 진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기도 하는 이들이 10·20대에게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며 인기를 끄는 비결은 무엇일까. 신 작가는 보여주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저희는 답을 제시하지 않아요. 유머러스한 코드를 넣어 화두만 던지는 거예요. 해석은 독자가 알아서 하는 거죠. 사실 만화라는 게 굉장히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면 부지불식간에 어린 독자에게 주입식 교육을 할 수 있거든요. 그 친구들에게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웹툰은 지하철 한 구간 안에서 보고 망각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에게 이게 '바르다' '아니다'를 말하는 대신 어떤 주제에 대한 관심만 갖게 하고 싶어요."

시즌 1·2회를 통틀어 누적 조회수가 28억회에 달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데도 악플이 거의 없다. 독자들은 댓글란을 통해 작가들이 던진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거나, 캐릭터를 향한 애정과 지지를 드러낸다. 평점은 매화 9.9점(10점 만점)을 넘나든다. 두 작가는 '놓지마 정신줄'을 이 시대의 명랑만화라고 소개했다.

"사실 '놓지마 정신줄' 가족 구성원들은 정신줄을 놓을 수밖에 없는 포지션에 있죠. 아빠는 대기업에서 언제든 명예퇴직할 수 있고, 딸이 다니는 학교엔 왕따나 일진 문제가 있죠. 그런데 지금 세대 친구들은 세상도 '꿀꿀한데' 만화까지 '꿀꿀한 걸' 보고 싶어 하지 않아요. 세상이 우울하니까 저희는 어떻게든 명랑만화를 만들어주려 해요. 우리가 이야기 톤을 밝고 경쾌하게 가져갈수록 인물들 그림자가 더 짙어진다는 건 딜레마지만요."

록 밴드도 10년이면 해체하는데, 이들은 10년을 달려오고도 새로운 협업 아이템 구상에 즐거운 모습이었다. 스토리 담당 신 작가가 나 작가 그림을 보고 "이 따위로 그릴 거야?"라고 물어보면 나 작가가 "그럼 그 따위로 그릴 게요"라며 농으로 받아칠 정도로 막역한 사이다. 신 작가는 자신의 스토리가 나 작가를 통해 어떻게 재해석될지 여전히 기다려진다고 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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