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김광일의 입] ‘윤지오의 농단’, 대통령이 해명하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KBS 뉴스 2019년3월7일 방송에는 제목이 ‘장자연 문건‧성추행...유일한 목격자의 증언’ 이라는 뉴스가 나간다. 여기서 ‘유일한 목격자·증언자’ 행세를 했던 사람이 바로 단역 배우 출신 서른두 살 윤지오씨, 본명 윤애영 씨다. 윤지오씨는 이밖에도 MBC, 한겨레, 경향신문에도 나왔고, JTBC 뉴스룸 손석희씨, tbs 뉴스공장 김어준씨와도 인터뷰했다.

다음 2019년3월15일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여성단체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이다. 이 자리에서 윤지오씨는 "장자연은 단순 자살이 아니다. 공소시효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또 2019년4월8일 국회에서는 ‘장자연 증언자, 윤지오 초청 간담회’를 연다. 문광위 위원장인 민주당 안민석 의원, 권미혁·남인순·이종걸·이학영·정춘숙 의원, 바른미래당 김수민, 평화당 최경환, 정의당 추혜선 의원 등 9명이 ‘윤지오와 함께 하는 의원 모임’을 결성했다.

그런데 윤지오씨 관련 여러 매체 인터뷰, 여성단체 회견, 국회의원 지원 모임, 세 가지를 말씀 드렸는데, 이것보다 10배쯤 중요한 일이 있었다. 2019년3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은 박상기 법무, 김부겸 행안, 두 장관으로부터 보고 받는 자리에서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세 사건에 대해 철저 수사 지시를 내렸다. 문 대통령 말투가 여간 강경한 것이 아니었다. "(두 장관은) 함께 책임지고 (…) 여러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주기 바란다." "(공소 시효가 끝났으면)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았으면) 엄정한 사법처리를 해주기 바란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가장 강경한 명령을 내린다.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 이라고 했다. ‘조직의 명운’을 걸라니, 검·경 수뇌로서는 재임 중 인사권자 대통령에게 들을 수 있는 가장 살벌한 수사 지시를 받은 것이었다. ‘조직의 명운을 걸라’는 명령은, 조선왕조나 북한식 표현으로 바꾸면 "성사시키지 못할 시 네 목숨은 물론 집안도 무사치 못할 것이다" 그런 뜻이다. 들으면서 등골이 오싹했을 것이다.

자, 어쨌든, 그렇게 대통령의 강경 지시가 있은 뒤로 3개월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유일한 목격자’라던 윤지오씨가 입 밖에 꺼낸 말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거짓말이거나 사기 혐의로 소송을 당하고 말았다. 첫째 윤지오씨는 장자연과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장자연의 최후 순간을 잘 알지도 못했다는 반박 증언이 쏟아졌다. 둘째 박훈 변호사는 윤지오씨가 봤다는 장자연 문건에 대해, 그녀가 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셋째 작가 김수민씨는 장자연씨의 유가족이 윤지오씨가 책 ‘13번째 증언’을 내는 것에 반대했는데 윤지오씨가 일방적으로 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 수십 가지 문제 발언이 있지만 하나만 덧붙인다. 윤지오씨는 어떤 영상에 대한항공 여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나와 연극 ‘보잉보잉’에 출연했을 때 갖게 된 옷이라고 했다. 그러나 극단 쪽에서도 대한항공 쪽에서도 이 말들이 모두 전혀 사실과 다른 거짓말이라고 확인했다. 3월30일 윤지오씨가 냈던 국민청원, ‘비상호출 스마트워치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본인 잘못으로 드러났다. 윤지오는 가장 기본적인 것도 거짓말을 한다. 캐나다로 떠나면서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보러 간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한국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작가 김수민씨와 박훈 변호사는 윤지오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박 변호사는 뒤에 ‘사기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 윤지오씨는 CBS 김현정 뉴스쇼에 나와서 "장자연 문건에 특이한 국회의원 이름이 있었다"고 했다. 이와 관련 몇몇 시민단체가 홍준표 전 대표를 거론하며 수사를 촉구하자, 강연재 변호사가 윤지오씨와 시민단체를 명예훼손과 무고혐의로 고소했다. 또 윤씨에게 후원금을 냈던 후원자 439명이 "돈을 돌려 달라"며 후원금 반환 소송을 냈다. 또 박민식 변호사는 경찰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윤씨의 호텔비 900만원을 지원해준 것을 지적하며 "윤씨가 피해자인 양 속여 거짓과 부정한 방법으로 기금을 지원받았다"고 기금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검찰 과거사위는 5월20일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서 "리스트는 없다"고 결과를 발표했다. 박상기 법무장관은 지난 석 달 ‘조직의 명운’을 걸었는지는 모르겠으나, 6월12일 검찰과거사위원회 활동종료 기자회견을 하면서 기자들 질문조차 받지 못해 ‘나 홀로 기자회견’을 하고 말았다.

자, 이쯤 되면 이번 사건은 ‘장자연 관련사건’이 아니라, 그냥 ‘윤지오 사기사건’ 아닌가. 대통령의 지시가 있자 앞뒤 분간 못하고 윤지오에게 놀아난 ‘안민석 피에로 사건’ 아닌가. 희대의 대(對)국민 사기극, 대(對)언론 가짜 플레이, 대(對)국회 광대놀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일개 단역배우인 윤지오씨의 자작극인가, 아니면 누군가 배후 조종 세력이 있는가. 대통령 지시를 실행하기 위한 시나리오가 있고, 그 시나리오에 걸맞은 윤지오라는 피에로를 캐스팅한 주범이 있고, 광대를 무대에 올린 배후 세력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것도 없는데, 안민석 의원이 어수룩하게 속아 넘어간 것인가.

이쯤 되면 검·경에게 ‘조직의 명운을 걸라’고 했던 문 대통령이 그 핵심 증인 행세를 했던 ‘윤지오 사기사건’과 관련해서 국민들에게 해명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일이 어그러진 지금 대통령은 사과해야 할 부분은 사과해야 한다.

윤지오씨를 데려다 기자회견을 했던 여성단체는 왜 아무 말이 없는가. 아직도 윤지오씨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가.

안민석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했다. "최근 선한 의도로 윤지오 증인을 도우려 했던 여야 국회의원들이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그분들은 저의 제안으로 선한 뜻으로 윤지오 증인을 도우려 했다." "윤지오 출판기념회는 성직자 한 분께서 선의로 도와 달라고 요청하셔서…"

안 의원에게 몇 가지 묻는다. 안 의원은 아직도 윤지오를 ‘증인’으로 보는가, 그래서 아직도 증인이라고 부르는가. 사리사욕을 챙기러 검찰 업무를 방해한, 사기 혐의의 피고발자일 뿐이라고 보지 않는가. 또 안 의원은 윤지오 지원 모임을 결성한 국회의원들이 ‘선한 의도’ ‘선한 뜻’ ‘선의(善意)로’ 나섰던 것이란 말을 했는데, 누구를 향한 선의(善意)인가. 윤지오씨의 정체를 모르고 나섰던 무지몽매한 선의였는가, 아니면 대통령 지시가 있었으니 무조건 앞장서고 보자는 권력아부 차원에서 선의였는가. 그 선의는 지금도 변함없는가. 아니면 ‘윤지오’라는 피에로에게 놀아난 뒤끝이라 감당을 못할 만큼 당혹스러운가.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광일 논설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